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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회복으로 신앙의 본질을 재고하다.

최종원 저,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를 읽고.

이 책은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인문주의자의 사회와 교회 읽기'라는 부제를 보면 조금 감을 잡을 수 있다. 출판사를 보아하니, 기독교 관련 책을 주로 출판하는 '비아토르'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책의 앞 표지를 넘기면, 저자 소개가 짤막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저자 최종원은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니다. 그는 역사학자다. 신학이 아닌 역사학을 배경으로 하는 인문학자인 것이다. 그제서야 부제가 담고 있는 의미가 선명해지며, 이 책이 무슨 의도로 써졌으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짐작할 수 있다. '아하, 이 책은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신학과 목회 영역 바깥에서, 그것도 역사를 전공한 한 인문학자가 바라본 이 시대의 흐름을 사회와 교회 중심으로 읽고 쓴 책이구나!' 

먼저 저자는 독자인 우리에게 '휴머니즘 (Humanism)'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알길 요구한다. 특히, 그 단어가 '인본주의'로 번역될 때, 우리도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을 수정하길 원한다. 인본주의를 '신본주의'의 반대말로 정의해버리고, 그 단어가 가지는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단순한 이분법으로 함부로 악마화시켜 버리곤 하는, 많은 기독교인의 경솔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경솔함 덕분에 많은 기독교인은 신본주의,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거룩한 삶을 추구했으나, 정작 손에 쥔 쟁기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분리였으며, 그렇게 수고하여 얻은 열매는 교회 시스템과 예배 (제사) 안에 갇힌 생명 없는 하나님사랑, 인간성 상실, 정의와 공의의 상실, 그리고 더욱 진해진 자기애였다. 

언제 이웃사랑 없이 하나님사랑이 가능한 적이 있었던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 (마 25:40)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하나님 형상 따라 창조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 (창 1:27-28)이 폐지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심화되지 않았던가. 하나님이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것에 대해서 만큼이나 보편적인 인간성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 같지 않은가. 두렵지 않은가. 신본주의를 지키려는 편향된 행위가 사실은 자기애의 농도를 진하게 만들어 사적인 영역으로 기독교 복음을 축소시켰고, 그렇게 악마화시킨 인본주의는 자신이 아닌 타자를 배제하고 죽이지 않았던가. 신본주의의 진정한 반대말은 인본주의가 아니라 소위 원죄라고 불리는 나르시시즘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본주의를 악마화시키고 경시하는 경솔함은 신본주의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숨어 타자를 죽여서라도 사사로운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살인자의 더러운 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답게 이 책은 중세를 지배했던 가톨릭 교회와 루터로 대표되곤 하는 종교개혁의 바른 이해, 근대사회가 열리면서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 재정립의 역사,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의 위치와 그 의미까지, 적재적소에서 저자가 바라보는 사회와 교회의 현실에 접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학자와 목회자가 이해하는 역사와는 사뭇 다른 역사학자의 시선은 우리가 그 동안 놓쳐왔던 역사적인 여러 에피소드들의 바른 이해를 돕는다. 때론 문제가 발생한 시스템 안에서는 그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한 인문학자의 날카로우면서도 편협하지 않은 비판적 시선은 한국 사회와 교회가 처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바른 제안이 되리라 나는 믿는다. 해방과 구원은 언제나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컨텍스트를 고려하지 않은 텍스트의 부르짖음은 그것이 아무리 의미심장하다 할지라도, 저자가 간파한대로, 교회 개혁을 위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일견 거룩해 보이는 운동조차도 결국은 성경으로 도피하는 모양새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으로서 현재 한국 교회 전반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대기업이 되어버린 대형 교회와, 스스로 구약의 제사장이나 영적인 아버지를 자처하며 그 대기업을 이끄는 사장들의 윤리적 타락이나 세습과 횡령 등의 부조리는 한국 교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바른 가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인문주의자로서 교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불신앙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종교를 향한 희구라며 여전히 한국 교회에 대하여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비록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자본주의 체제의 어두운 면이 그대로 교회 시스템과 접목되었고, 그 결과 교묘하게 자기애의 발현이 일상적 파시즘이 팽배한 대형 교회를 위시하여 번영 신학으로 발전되어 왔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회와 교회를 씹고 뱉어버리는 목적이 아닌, 다시 교회를 살리기 위한 교회다운 교회로의 탈구축에 있다고 봐야 한다. 저자의 냉철한 사회와 교회 읽기에는 뜨거운 사랑과 변함없는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소망이 녹아 있는 것이다. 

대중독재와 일상적 파시즘을 넘고, 국가주의와 성직주의와 엄숙주의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사회의 공공선을 앞장서서 추구하는 교회. 배제와 혐오가 존중과 배려로 거듭나고, 사적인 복음을 넘어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하며, 확신의 죄에서 벗어나 의심의 어두운 터널을 용기 있게 통과하며 비판적 성찰을 일상화하는 역사의 주체가 되길 나 역시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인격적이면서 공적인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한국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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