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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
일반적인 퇴근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오후 5시를 훌쩍 넘겨 6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둑어둑해지는 풍경을 보스의 오피스에 난 커다란 창을 통해 바라보아야만 했다. 오전에 2시간이나 얘기를 나눴는데도, 보스는 턱없이 부족했었나 보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 중 하나가 정말 흥미진진하게 돌아간다. 거의 4년 가량 진행되고 있는 녀석이다. 확연한 결과도 결과이지만, 이에 대한 해석이 가관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아무도 보지 않은 길을 나 혼자 먼저 보고 걷는 기분. 이 맛에 과학을 하는 게 아닐까. 문제는 생각보다 이 프로젝트가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부디 끝까지 잘 풀어갔으면 한다. 요즈음 거의 매일 보스와 나를 흥분시키고, 오늘은 밤이 될 때까지 우리 둘을 오피스에 잡아 놓는 등, 이런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고 내년에는 꼭 멋진 논문으로 열매 맺혀지면 좋겠다.
어두워진 길을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내가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대학원생 때와 포닥 초창기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도 달라졌다. 과학 하기에 대한 나의 태도에 거품이 빠졌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니면 열정이 식어 밥벌이로 전락해버렸다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예전엔 그렇게나 확신이 차서 거의 모든 부분에 거만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감에 넘쳤었던 것 같은데,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면서부터 대부분의 영역에서 확신을 거둬들이는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순진함이 사라지고 점점 영악해져 가는 걸까, 아니면 더 큰 세상을 접하면서 더 지혜로워지는 걸까. 이것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던 자가 그 모든 것에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 이 여정. 나의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들면서 느낀 소감. 오늘따라 참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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