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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의외의 레슨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5. 02:04

의외의 레슨.

알려진 모든 암의 90 퍼센트 이상은 40대 후반부터 꾸물꾸물 기미를 보이다가 5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발생한다. 심장병과 관련한 심혈관 계통의 병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볼 땐 점점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상태로 진입한다는 말이다. 태어나 20-30대까지의 전체 기간보다 50대 이상인 사람들의 1년이 가지는 암 발생 확률의 곡선 기울기가 더 크다. 그리고 우리 중에 세 명 중 한 명은 암으로 죽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생물학적인 인생의 후반전은 감상이란 전혀 없이 이렇게 잔인하기만 하다.

암은 암세포의 증식에 의거한다. 암세포는 디엔에이의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누적되는 돌연변이가 생체 내에서 선택되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어떤 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암의 발생과 진행과정에서는 암세포도 중요하지만 암세포가 잘 자라날 환경 또한 중요하다. 이 중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함께 증가하는 중요한 환경요소가 바로 염증이다. 우리는 세포의 돌연변이를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세포 분열은 무작위적인 실수로 아주 드문 확률이지만 돌연변이를 만든다), 염증과도 같은 환경을 조절함으로써 암의 생성을 더디게 하거나 악성으로 진행되는 확률이나 속도를 줄이거나 막을 수는 있다. 적어도 약 효과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늘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물학자들은 포유류 중 다른 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서 세포 수도 훨씬 많은 고래나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세포 분열이 많을수록 돌연변이 발생 확률이 높아질텐데, 그래서 의외라고 생각했던 생물학자들은 이유가 궁금했다. 또한 몇몇 설치류에서도 보통 2-3년을 사는 생쥐와는 달리 20-30년의 의외로 긴 수명을 암에 전혀 걸리지 않고 사는 놈들도 발견됐다. 이런 동물들로부터 암이 안 걸리는 중요한 기작을 알아내고,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암으로부터의 해방에 굉장한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생물학자들은 당연히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 다 밝혀진 건 아니지만, 여러가지 이유가 알려졌다. 생체 내에는 암을 막는 데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들의 역할이 강하면 암 유발하는 유전자가 힘을 잘 쓰지 못한다. 또한 염증 반응이 현저히 낮다거나, 세포가 느린 속도로 분열한다거나, 세포분열 시나 어떤 디엔에이의 손상을 입었을 때 고치는 기작이 탁월하게 발달되어 있다거나, 암세포나 기타 돌연변이 세포를 죽이는 기작이 발달되어 있는 사례가 이미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세상엔 다양한 동물들이 존재하는데, 그렇게 하찮게만 보아왔던 동물들로부터 의외의 소중한 레슨을 배울 수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 오전에 심포지움에 참석하며 세 개의 발표를 들었는데, 새롭고 재밌고 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자기 전에 기억도 할 겸, 페친들을 위해 어색하더라도 일반적인 한국 용어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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