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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세 가지 글쓰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13. 01:22

**다음은 며칠 전 군대 얘기 때문에 잊어버렸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다. 글이 만들어지는 몇 가지 다른 과정에 대한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하는 게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세 가지 글쓰기.

첫 번째, 받아 적는 글이다. 즉,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뿜어져 나오는 생각을 주워 담느라 급급한 마음으로 쫓기듯, 받아 적듯 쓰는 글이다. 보통 어떤 장면을 목격하거나 관찰하면서 마음에 담긴 어떤 불특정한 잔상이 내 안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던 기억의 조각들에 숨을 불어넣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곤 한다. 바닥의 먼지처럼 무질서하게 나뒹굴던 생각의 파편 중 몇몇이 알 수 없는 어떤 과정에 의해 선택되어 조용히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무언가 하나의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그림이 퍼즐처럼 맞춰져 그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살면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그런 순간에 느낄 수 있는 희열이라고나 할까. 나이가 들면서 더욱 현저하게 체감하는 망각의 속도에 붙잡히지 않으려 기억의 전력질주를 하는 다급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글은 마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절박한 심정과 숨가쁜 심장으로 써지는 글이 된다. 이런 순간은 살면서 자주 오지도 않을 뿐더러, 왔다 하더라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져버리기에, 아마도 지금 이 글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예기치 않은 기쁨을 늘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묵힌 글이다. 글의 재료는 첫 번째의 산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왠지 모르게 쉬이 발설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재빨리 공개해서 영예를 거머쥐고자 하는 마음과는 정반대의 마음이랄까. 가능한 오래 묵히고 묵혀서, 인스턴트 식품 맛이 아닌 오래된 장맛이 켜켜이 베인 맛을 내는 글을 만들어내고 싶을 때다. 첫 번째와 비교해서 두 번째 글의 장점은 고독과 침묵, 묵상과 성찰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반짝였다 사라져버리는 별이 아닌 지긋이 오래가는 달과 같은 글인 것이다. 이런 글은 정갈할 수밖에 없고, 한 번 읽고 난 뒤와 두 번 읽고 난 뒤가 다를 수밖에 없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지만, 다시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담고 있는 글이기에, 여러 번 읽을수록 글이 가진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세 번째, 짜내는 글이다. 보통 어떤 압박 (이를테면, 원고 마감이나 여러 원인의 의무감)이 가해질 때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요리조리 조합하며 기름을 짜내듯 만들어내는 글이다. 언뜻 보면, 이런 글은 쫓기듯 쓰는 글이기 때문에 그리 좋은 글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이런 글은 첫 번째 스타일의 글의 절박함과 두 번째 스타일의 퇴고 과정이 합쳐져서 탄생하는 글이며, 쓰는 이의 두뇌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치열하게 작동되어 탄생하는 글이 된다. 마지막까지 쥐어 짜내는 글에는 혼신의 힘이 담기기 마련이다. 또한, 글이란 게 쓰기 전에 쓸 것들이 구상될 때도 있지만, 쓰다 보니 그것의 피드백으로 더 쓸 거리가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글은 가끔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글을 계속 써댈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글의 한계가 아니라 글쓴이의 한계. 체력과 정신력의 소진으로 글쓴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임팩트를 내는 작품이 이런 글쓰기에서 나올 확률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글쓰기를 지양한다. 치열함은 있을지언정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글읽기는 취미로 하는 글읽기며, 진정한 글쓰기는 여백이 느껴지는 글쓰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스타일의 글엔 여백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짜내고 짜내다 보니 채우기만 할뿐 비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글을 읽을 때 깊은 감동을 받거나 오래가는 여운이 느껴지는 부분은 채워진 부분이기 보단 비어있는 부분일 때가 의외로 많다. 이러한 여백의 미는 세 번째 스타일의 글에선 찾기 힘들다.

글 쓰는 과정에 따른 글쓰기를 세 가지로 내 맘대로 나눠봤다.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세 가지 스타일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쓸 수 있는 작가가 하나만 잘 쓰는 작가보단 낫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번째 글쓰기를 지향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렇게 된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 번째 스타일의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리고 두 번째 글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투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첫 번째 글이 순발력이라면, 세 번째 글은 치열한 이성이다. 그러나 두 번째 글은 순발력도 치열한 이성도 아닌 그것들을 모두 가진 인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공감은 이성뿐만이 아닌 감성과 영성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어떤 터치가 있을 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언젠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생이 다하기 전에 두 번째 스타일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쓸 수만 있다면 나의 글쓰기는 분에 넘치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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