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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근력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9. 12. 02:26

근력.

글을 읽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둘은 서로 상승 효과를 낸다. 읽은 것들은 글을 쓸 때 밑천이 되어주고, 쓴 것들은 글을 읽을 때 보다 넓고 깊은 눈을 열어준다. 많이 읽는 사람이 쓰는 글은 적게 읽는 사람의 글과 다르기 마련이고, 많이 쓰는 사람의 글 읽는 눈은 글을 안 쓰거나 적게 쓰는 사람의 눈과 다른 법이다. 읽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쓰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눈이 있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이 둘은 상승 효과만이 아닌 배제 효과도 낸다. 글을 읽기만 하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또 쓰기만 하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읽고 싶을 땐 쓰기 싫고, 쓰고 싶을 땐 읽기 싫을 때가 종종 찾아온다. 난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면 여전히 긴장한다. 아마도 읽고 쓰는 것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은연 중에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냥 맘 내키는 대로 하면 되지 않냐고, 본능에 따르라고, 마음껏 쓰거나 읽기만 해보라고 조언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그렇게 해봤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알게 된 중요한 교훈 한 가지가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나의 필력의 한계에 관해서, 글읽기에 있어서는 나의 이해력과 상상력의 한계에 관해서다.

 쓰지 않고 읽기만 할 땐, 입력값이 너무 많아 나의 소화능력을 금새 초과해버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의외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선을 넘어설 즈음에는 글의 소중함이 사라진다. 글자들과 문장들은 그저 발길에 채이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으나 손으로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더 이상 내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면 읽는 행위는 퇴색되고, 글읽기로 인해 얻던 샘물은 바싹 마른다. 

반면, 읽지 않고 쓰기만 할 땐, 출력값이 너무 많아 금새 내 안에 저수지처럼 고여있던 필력이 다 방출되어 바닥이 노출된다. 더 이상 글에는 새로움이 없을뿐더러, 오로지 기계적이고 중언부언하는 글자들과 문장들만이 의미없는 춤을 춘다. 보통은 허세를 떤다거나 쓸데없는 묘사만이 부유하는 글이 만들어지더라. 가진 게 없으나 가진 것처럼 보이고 싶을 때 비밀리에 인간들이 하는 짓이란 다 똑같으니까. 허나, 이때는 소위 내공이나 깊이라고 부르는 것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아주 얕은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력이 필요하다. 먹기만 해서 얻을 건 결국 비만밖에 없다. 반대로, 소비하기만 해서 얻을 건 오로지 탈진이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기와 소비하기의 균형이 필요하듯, 좋은 글을 위해서는 읽기와 쓰기의 균형이 필요하다. 두 가지의 배제 효과를 이겨내고 상승 효과를 추구하며 균형을 이루려 노력할 때 근력이 생성된다고 믿는다. 좋은 책을 골라 찬찬히 읽으며 내것으로 만드는 학습의 작업. 그리고 그것을 내것으로 표출하는 창조의 작업. 언젠가는 오래 읽힐 수 있는 멋진 소설을 하나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수많은 시간을 거친 나의 근력의 열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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