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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경솔한 심판자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22. 02:19

경솔한 심판자.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편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번 보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가는 쉽게 가는 사람이 있다. 한때는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느 상황 어느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어떤 일관된 규칙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이렇듯 원인은 분명하지 않으나 결과는 분명한 사건이 바로 사람과 사람 만남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한다. 이성과 감성의 어느 한 잣대로만 결코 해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사람과의 만남은 신비임이 분명하다.

어떤 사람을 이성적으로 먼저 만난 뒤 생각이 통한다고 여기고 마음을 열게 된다 해도, 우린 곧잘 상대에 대한 실망에 봉착하고야 만다. 맨 처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주로 언행일치의 부재다. 자신이 생각해왔던 사람과 다르다는 느낌, 그 이질감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리곤 아주 쉽게 다음과 같이 판단해버린다. “역시, 이 사람도 입만 산 놈이었군.” 곧이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은 처음 가졌던 것과는 전혀 반대 방향이자 갑절로 부정적으로 변하고 급기야 혐오하게 되거나 잊으려 애쓰게 된다.

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와 비난을 하게 되는 경우는 살면서 수시로 만나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며 등골이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놀랐던 사실은, 그런 필터링을 통해 늘 상석에 앉는 사람이 유일하게 나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언제나 심판자 위치에 있었으며, 그들은 늘 피고석에서 내 일방적인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공정했던 내 심판을.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나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혐오의 대상으로 강등된 그들은 반드시 악의 축이어야 했다. 내 마음 속에서 유죄 선고를 내린 이후에도 그 사람을 마주할 때면, 그 사람은 언제나 내 앞에선 발랑 벗겨진 채로 거짓과 위선으로 충만해야 했다. 그래야만 과거의 내 판결이 100 퍼센트 정의로운 기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심판자 친구들 몇몇과 입을 맞춰 둔다면, 혹시라도 혼자 있을 때 불쑥 찾아오는 양심의 소리에도 끄떡하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내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그들에게 50 퍼센트 정도 존재한다. 만약 그 100 퍼센트 정의롭던 내 심판이 그저 나의 편향되고 옹졸했던 개인취향에 따른 선택일 뿐이었다면, 만약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사람에 대한 상상이 애초부터 틀렸던 거라면, 그것이 그저 나만의 조그만 우물에 굴절된 나의 삐딱한 관점일 뿐이었다면, 이 모든 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하는 걸까.

상대방을 잘 안다거나 혹은 잘 모른다거나,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해 실망했다거나 혹은 다시 보니 괜찮은 것 같다거나 하는 주관적 판단에 너무도 경솔했던 내 모습을 반성한다. 함부로 판단하는 자는 결코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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