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는 것은 포기나 체념이 아닌 지혜다. 회피가 아닌 도전이다. 뒤로 물러섬이 아닌 앞으로 나아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언젠가부터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좋아졌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 단어가 주는 불안이 두려웠다. 내 삶에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포함시키고 싶지도 허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내 삶을 내어준다는 건 비겁하고 무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의식 중에 불확실성으로부터 내 삶을 사수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잘 사는 삶, 성공하는 삶의 모습 같았다. 인생의 전반전을 이루던 나의 은밀한 가치관이었다.막연하고 유치하고 진부한 바람일 뿐이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막 시작할 무렵, 고통이라 할 수 있을 경험을 하고 난 이후 나는 인생은..
정갈함과 고요함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고독과 외로움한정원 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읽고두 번째로 만나는 한정원의 에세이다. 정갈한 문장들이 다시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긴다. 시끄러웠던 내 마음도 마침내 고요다. 몸도 마음도 분주한 일정이었다. 부산을 오가는 열차 안에서 가쁜 숨을 돌리기 위해, 벌써 반년간 가방 속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을 꺼내 들었다. 8월 1일을 여는 첫 에세이부터 할 말을 잃었다. 시인의 낯선 문장들은 그림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고, 그 그림에선 오래 묵은 향이 났다. 몸은 낯설지만 마음은 익숙하고 편안한, 오래된 숲의 향이었다. 나는 시인과 함께 숲 속에서 죽비 소리와 시시오도시 소리를 들었다. 사찰에서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들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정착과 떠남의 경계헤르만 헤세 저, '크눌프'를 다시 읽고7년 전 크눌프는 산소, 천사, 혹은 닮고 싶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달랐다. 내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회한 크눌프는 한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자유'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보다, 드러나지 않은, 혹은 드러낼 수 없었던 그의 삶의 여집합이, 그 여백이 훨씬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가 애써 채워 온 삶이 아닌 그가 끝내 채우지 못했던 삶에서 나는 깊고 깊은 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크눌프에게 동경이 아닌 강한 연민을 느꼈다. 인간은 정착과 떠남의 무한반복을 살아간다. 정착은 안정을 선사하지만 그 안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올무로 바뀌곤 한다. 떠남은 불안을 야기하지만 그 불안은 종종 삶을 ..
무례하지 않기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소소한 것들에 기뻐하고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거리를 두고 싶어 진다. 어른스러움을 바라지만 아이 같은 순수함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자라지 못한 어른을 원하는 건 아니다.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줄 아는 어른이 나는 좋다. 많은 것을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두루뭉술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점점 더 까탈스러워지는 부분도 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할 줄도 알지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를 고를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선은 조금씩 변화를 거친다. 잡음이 나지 않을 수 없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후회 없도록, 조금은 털털하게 또 조금은 이기적으로 그 선을..
-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