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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찬란하게 빛났던 무거운 하루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3. 20. 15:31

찬란하게 빛났던 무거운 하루.

재택근무 덕분에 연장된 봄방학을 맞이한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수 있다는 건 분명 과분한 혜택이다. COVID-19은 여태껏 보이지 않아 감지하지 못했던 여러 겹의 기득권 경계를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무겁고 죄송스런 마음으로 아직은 낯선 공간에서 아침에 눈을 뜬 지 오늘이 벌써 나흘 째.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코로나 사태를 전혀 모른다는 듯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났다.

집에만 있긴 답답해서 하루에 두 번은 산책을 나간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사람들만 증발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선 황량함마저 느껴진다.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열흘을 넘겨서인지 낯섦은 내게 적어도 두 배는 증폭되어 다가온다. 어쨌거나 이 느낌은 내게 이 도시의 첫인상이 될 것이다.

집 근처에 훌륭하게 조성해놓은 공원이 있다. 인간의 손 냄새가 진하게 배여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자연과 접촉할 수 있어서 좋다. 오늘 아이와 나간 산책에서 찍은 사진을 하나 공유한다. 내일은 둘이 아닌 셋이서 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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