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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소설과 논문, 그 긴장 속에서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4. 15. 02:44

소설과 논문, 그 긴장 속에서.

난 소설이 좋다. 특히,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 읽기를 즐긴다. 그렇다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그럴 마음도, 그럴만한 이유도 없다. 다만, 그것들은 어지간해서는 내 관심을 사지 못하고 결국 내 지갑을 열지 못한다. 난 아직도 고전문학에 목이 마르다.

소설만이 가지는 힘이 있다. 신학도 철학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을 소설은 어느새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다. 몇 년 전부터 신학책도 철학책도 꾸준히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지만, 내가 문학만이 가지는 그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힘을 느낀 건 고전문학, 특히 고전소설 덕분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현대소설을 읽으며 내가 감지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하는 영역을 누비며 희열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전소설에 흥건히 매료되었으며 그 저항할 수 없는 맛을 봐버렸다. 노예가 되었다. 어떤 커다란 계기가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십 년 후에도 고전문학을 읽으며 인간을 (나와 타자를), 세상을, 또 신을 생각하고 저자들의 독특한 필체를 음미하며 그것들을 내것으로 조금씩 흡수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아마 그때 즈음엔 나만의 소설도 어느 정도 뼈대를 갖출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하면서.

논문을 쓰다가 소설을 읽으면 자유을 느낀다. 하지만 반대로, 소설을 읽다가 다시 논문 작업을 시작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느끼는 감정이다. 비도 연이어 내리는 요즘 같은 날이면 작가라는 직업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신비함의 옷을 잔뜩 껴입고 있는 감상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문학은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다. 그래서 소설은 논문보다 더욱 심미적이다. 난 그 심미적인 세계가 가져다주는 자유가 좋다. 풍성하고 끝이 열린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가끔 그 세계는 우리 현실을 섬뜩하리만큼 반영하기도 예언하기도 하며, 또 가끔은 넌지시 하나의 답을 알려주기도 한다. 우린 거기서 깊은 공감과 위로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선 단편적인 단서들로 무장한 세상에서 면밀한 관찰자가 되고 치열한 토론자가 되어 끊임없이 묻고 따지고를 반복해야만 한다. 과학자라는 직업으로 밥벌어 먹으며 고전문학 읽기를 좋아하는 동시에 글쓰기를 사랑하는 나는 오늘도 이러한 변증법적 긴장 속에서 또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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