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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하나님나라 백성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크리스토퍼 라이트 저,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을 읽고.

성경은 드라마다. 성경은 규율이나 교리로 가득찬 책이 아니라, ‘창조’라는 시작과 ‘새창조’라는 끝을 가진 거대한 내러티브이며, 그 안에 구속이라는 플롯을 담고 있는 온 세상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다. 또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각기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진행 중인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초청 받는다.

신약의 존재는 구약의 폐기를 뜻하지 않는다. 바울을 잘못 해석한 나머지 율법과 복음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구약을 율법, 신약을 복음이라고 여기거나, 예수를 잘못 해석한 나머지 구약의 옛 계명은 모두 폐기되었고 ‘사랑’이라는 새 계명만이 유효한 것처럼 구약을 그저 오래된 율법책 정도로 축소, 폄하, 왜곡시켜버리는 행위는 지나친 경솔함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예수와 바울이 어릴 적부터 읽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했던 성경은,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선포했던 근거가 되는 책은 신약이 아닌 구약이었다는 사실을 우린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거대한 내러티브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은 모두 이 내러티브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현실이라는 컨텍스트를 끊임없이 해석해나가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 적용하는 모든 신앙생활의 근거는 이 거대한 내러티브이자, ‘이스라엘’이라는 특수성의 옷을 입고 있지만 ‘열방’이라는 보편성을 담지한 이야기, 즉 구약을 통해야만 한다. 그 안에 그리스도인의 뿌리가 있고 그리스도인의 변하지 않는 컨텍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약의 예수는 약속의 성취이고, 그 약속은 철저히 구약에 기반한다는 점을 이해할 때, 구약은 결코 그리스도인에게 악세서리 같은 정도의 책이 아니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일 것이다. 

언제나 기억하기보다 잊어버리기를 잘 하는 우리들에겐 정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성경 곳곳에서도 성경이라는 거대 내러티브가 간략하게 요약 정리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간파한 것처럼, 예수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 두 가지로 성경을 정리했으며, 미가는 ‘정의와 인자와 겸손’ 세 가지로, 모세는 ‘경외하고 행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지키는 것이 전부’라며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또한 사도행전에 소개되는, 돌에 맞아 죽어간 스데반의 마지막 설교, 지도자들 앞에서 거침없고 담대하게 행해졌던 베드로의 설교, 그리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쓰임 받은 바울의 수 차례 설교에 이르기까지 우린 성경이 함축적으로 정리되어질 때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되었던 역사를 목격할 수 있다.

저자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성경을 일곱 개의 막 (1. 창조 – 2. 반역 – 3. 약속 – 4. 복음 – 5. 선교 – 6. 마지막 심판 – 7. 새창조)으로 이루어진 드라마로 본다. 이는 전통적인 ‘창조 – 타락 – 구속’의 플롯이 가진 허점들을 보완하고 더욱 풍성한 시각을 갖게 해주는 동시에 그가 대표적으로 칭한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백성의 선교’ 개념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런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이 책에서 구약을 대표적인 일곱 문장으로 크게 정리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의 새로운 정리에서 우린 또 한 번 새롭게 구약 전체를 바라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더욱 풍성히 알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기존의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저작을 읽어본 사람들에겐 그리 새롭지 않다. 일곱 문장 중 앞의 네 문장은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창조부터 시작해서 다윗의 왕정시대까지 이르는데, 각 챕터의 핵심은 저자가 이미 ‘구약의 빛 아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말했던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시내산) 언약’, 그리고 ‘다윗 언약’에 대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첫 장 ‘창조’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좌표와 정체성, 죄와 악의 출현이 야기한 문제와 그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의 일부로 그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하나님을 대리하여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존재다. 이때의 다스림, 즉 왕권은 곧 섬김이며, 바로 그리스도의 방식이다. 반역과 불순종으로 인해 인간에게 들어온 죄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창조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 해결책은 오직 하나님만이 제공하실 수 있다.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구원 계획이다. 좋은 소식은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창조 세계 전체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운명은 이 땅 밖으로 구조되어 다른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다. 창조 세계 전체와 함께 구원받고, 구속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창조 세계에는 다시 저주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장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 즉 창세기 3-11장까지의 모든 문제들에 답을 제공하는 이야기의 서두를 그 핵심으로 한다. 저자는 아브라함 언약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고 계셨지만, 그분의 눈은 온 세상을 향해 있었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는 게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택함을 받았던 것은 배타적인 특권이 아니라 막중한 책임이었다. 비록 그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예수가 이를 성취하셨다).

세 번째 장, ‘출애굽’에서 저자는 ‘구속’에 이은 ‘책임’을 강조한다. 곧 시내산 언약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주지하다시피 율법은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부과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율법은 이미 구속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다. 출애굽 이후에 시내산 언약이 있지 않았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의 율법은 이미 그분의 구속하시는 사랑과 능력의 은혜를 경험한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이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라 생각한다.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계획되었던 제사장 민족 이스라엘로 살아가는 것에 우리의 눈이 머물러야 할 것이다. 개인구원에 천착한 사적인 믿음이 아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윤리적 실천, 즉 복음의 공공성에 복음의 본질이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장, ‘다윗’의 핵심은 부활하신 다윗의 자손 메시야 예수가 모든 창조 세계의 주이자 왕이시라는 고백이다. 이는 바울 복음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확언이기도 한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수행할 통치자로서 부르신 다윗의 자손이 영원히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모세오경과 역사서를 뒤로 하고, 다섯 번째 장 ‘예언서’를 다루는 다섯 번째 문장은 저자가 ‘하나님백성의 선교’에서 자세하게 쓴 하나님백성의 윤리적 변화와 순종에 대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며, ‘구약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서 다룬 내용도 일부 포함한다. 윤리적 변화 없는 외형적 종교를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실제적인 사회 정의가 결여된다면 아무리 열정적인 예배라도 무가치할 것이다. 제의는 사회적 악을 상쇄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공의와 긍휼과 겸손이며, 이는 예수도 동의하신 바다. 또한 이 배경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 우리 시대에도 조용하지만 거대하게 울러 퍼지는 메아리가 아닐 수 없다. 저자가 표현한대로 하나님나라에 굴복하는 일은 철저한 윤리적 변화를 뜻한다. 순종은 제사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그 순종은 복음의 공공성이 확립되어 여호와의 정의와 공의가 행해지는 하나님나라의 실현에 있다.

여섯 번째 장 ‘복음’에서 저자는 예언서에 나타나는 복음에 대한 기대를 전한다. 예언자들은 경고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다. 이는 여섯 번째 문장, 즉 이사야 52:7이 잘 드러내준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마지막 일곱 번째 장 ‘시편과 지혜서’에서 저자는 시편과 잠언, 전도서와 욥기를 망라하며 중요한 한 문장으로 마무리짓는다. “우리가 사랑하고 예배하고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분별 있고 윤리적인 삶의 제일 원리, 즉 삶 전체를 이끌어 가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저자의 저서 ‘구약의 빛 아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하나님백성의 선교’, ‘구약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성경의 핵심 난제들에 답하다’를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것들이 한 꺼번에 정리되는 것 같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신학교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일개 평신도로서 신학을 주먹구구식으로 섭렵하기 시작할 때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가 둘 있는데,  한국에서는 김근주, 외국에서는 바로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라이트다. 그를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깊고 풍성한 앎을 얻을 수 있었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를 바라보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일개 교회의 목사에 의지하지 않고 가질 수 있었다. 1947년생인 그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에 나는 감사를 표한다. 성공회 사제이기도 한 그는 성공지향적인 가치관과 개인구원론에 천착한 사적 신앙에 갇혀 있던 나의 눈을 열어준 고마운 은인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난 이 책을 시작점으로 강력히 추천한다. 이후 나머지 전작들을 훑어간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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