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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를 message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적용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내 안의 궁극의 평안을 가져온다. 이것은 신앙생활이기 이전에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의무임에 틀림없다. 늘 한결같지만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사람. 좋은 message를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감동할지라도 나의 의지가 가담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좋은 message에 불과하다. 내 주위에 좋은 message가 없어서 내가 불행한게 아니라, 결국 그 message를 나의 진짜 message로 삼으려는 의지가 없어서 불행해지는 거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상관없이 성령이 내주하시지만,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것은 끝없이 거듭되는, 거듭되어야만 하는,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의지와 노력이 뒷따라야 한다. 즉, 성령인도는 passive한 것이 아니라, active한 몸부림인 것이다. 자칫 '성령인도를 받자' 라는 말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결과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행위로 착각하기 쉬운데,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려놓고) 기다린다 혹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본다' 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청히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무장하여 복음과 하나님의 방향에 위배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걸림돌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수반되는 것들이므로 차라리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게 더 낫다는 의미도 있겠다 (잘못된 길인데도 계속 길을 거꾸로 가는 것보단 차라리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게 유익하니까).
한동안 인본주의를 배제하려는 생각과 노력으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할애되었었는데, 난 아직 그 인본주의의 실체가 뭔지 모르고 있었던 거다. 무조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게 성령인도를 받으며 인본주의를 사용하지 않는게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성령께서 가라고 할 때 가는 것이 성령인도다. 그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인본주의인 셈인 것이다. 성령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그것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내가 가만히 있을지 앞으로 가야할지를 정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인본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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