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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아주 일반적이어서, 누구에게라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써먹을 수 있는, 그래서 진정성을 가늠하기 어렵고 가볍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타자의 쉬운 위로와 충고가 자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건 적어도 자네의 자존감을 찾는 여정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네.
적어도 내가 아는 자존감이란 얕은 물에 부유하며 약한 파도에도 거품처럼 부서지는 그 무언가가 아니거든. 오히려 깊은 물과도 같아서 파도조차 잠잠할 수밖에 없는, 뚝심 있는 무거움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타자의 입에서 나오는 숱한 말로 쉽게 상처받고 쉽게 들뜨는 마음, 그래서 하루에도 수차례 하늘과 땅을 오가며 정신적 피로를 느끼곤 하는 마음. 나는 적어도 이런 마음가짐이 자존감이 강한 사람으로부터 나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네.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이란, 흔들리지 않는, 그래서 매력적인 그 무언가이지 않을까 하네. 그래서 그 자존감이란 건 타자의 가벼운 말들로 인해 쉽게 영향받지 않지. 즉, 별 영양가 없는 위로와 조언은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다는 거야.
물론 뻔한 말들 속에도 진리는 들어 있다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진리가 과연 보여질까? 눈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 그 진리가 말을 걸어올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그러니 너무 얕은 물에서 답을 구하려고 하지 말게나.
어쩌면 자네에게 진정 필요한 말은 단맛이 안 날 수 있을 걸세. 단맛만이 자네의 자존감을 증진시킬 거라 생각했다면, 애당초 출발부터가 이미 그릇되었을 수 있다고 보네. 알다시피 단맛은 사람을 일시적이고 게으르게 만들거든.
그리고 난 차라리 브레네 브라운의 말처럼 그런 건 광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네. 그녀의 주장이 내 삐딱한 귀에는 허무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용기라는 걸 강조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의한다네. 용기 있는 자가 깊은 물에 발을 담그는 거지.
얕은 물가에도 진리가 있겠지만, 아까 말했듯이 그 소중한 진리는 깊은 곳을 경험한 자들에게만 보여지는 축복 같은 게 아닐까 싶네. 그리고 깊은 물은 결코 달지 않을 걸세. 각오는 해야 하네.
지렁이가 왜 밟으면 꿈틀하는 줄 아나? 죽지 않았기 때문일세. 깊은 물을 향한다는 건 죽음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한 셈이지. 그렇다고 진짜 죽진 않을 걸세.
왜 내 눈엔 자네로부터 겉으로 맴도는 것만 같은 가벼움과 진정성이 결여된 것만 같은 허망함이 보이는 건지 잘 모르겠네. 자네의 말들이 왜 내겐 마치 어린아이가 때쓰는 것처럼 들리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
용기를 내게나. 타자의 가벼운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일세. 자네를 응원하네. 깊은 곳에 다녀오게나. 그래서 얕은 곳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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