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파국의 전초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9. 7. 05:17

파국의 전초.

교회 다니는 가장 흔한 가장의 경우 보통 삼중적인 삶을 산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서, 한 직장의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한 교회의 집사나 장로로서 일주일을 살아간다. 세 가지 일의 성격이 다르고 그 일에서 요구되는 모습도 다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린 세 인격이 아닌 한 인격만을 가진다. 여기서 자칫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는 괴리가 생겨난다.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몸으로 세 가지 다른 일에서 요구되는 것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세 가지 중 어딘가에서는 충실할 수가 없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 세 가지 중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모두 제대로 잡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놓치고 살아간다. 이 필연적인 상실과 결여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우린 어느 정도 그것에 대한 수치와 죄책을 느끼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아마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나는 늘 마음 한켠에는 말 못할 무거움을 가지고 산다.

이 시대가 출세나 성공을 했다고 인정하는 성공지향적인 사람의 경우 가정, 직장, 교회 중 직장에서의 일에 치중한다. 이는 꽤 흔한 경우다. 직장에 치우치게 되면 보통 가정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다. 가정은 필연적으로 희생당하게 되는데, 문제는 스스로가 그 희생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가정을 위해서 먼저 직장에 열심을 다하는 거라는 어설픈 논리로 자신의 자기애를 충실히 실현시키게 된다. 가정에 아이가 있다면 아이는 그 모습을 말없이 충실히 배우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런 부류의 경우, 세 번째 삶인 교회에서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열심을 내기도 하는데, 이 역시 두 번째 삶인 직장에서의 삶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이 잘 풀려서 감사함이 생겼다거나, 반대로 교회 생활하다가 기도하며 응답받아서 직장에서 잘 풀렸기 때문에 두 가지 삶 모두 상승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삶이 두 번째 삶의 수단인지 파트너인지 분별할 수 있는 명징한 방법이 있다. 바로 첫 번째 삶의 상실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십중팔구 교회에서의 삶조차 직장에서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그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삶은 물이 바가지로 샌다. 극단적인 경우, 가정에서의 삶이 오히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여기게 되기도 한다. 

첫 번째 삶, 즉 가정에서의 삶은 가장 기본되는 삶이다. 두 번째 삶, 즉 직장에서의 삶과 세 번째 삶, 즉 교회에서의 삶이 승승장구하는데 유독 첫 번째 삶에서 자꾸 물이 샌다면, 개인적으로 그 삶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와의 가중되는 불화, 아이들 양육에 대한 부담감과 그 부담감을 두 번째 삶에서 얻은 부수물인 돈으로 다 때우려고 하는 마음가짐. 이런 현상은 무너지는 가정에서 보이는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다. 

스스로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첫 번째 삶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아내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아이들은 자신이 돈을 많이 들여서 다른 집 아이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교육과 대접을 받고 있는데도 늘 불만과 불평만 해댄다고. 아빠가 얼마나 뼈빠지게 일을 하는지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고. 등등.

이런 것들을 모두 표면적인 사실일뿐 이면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모든 면에서 자기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세 가지 삶 모두 자기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다. 오로지 나 나 나로만 가득 채워진 사람의 눈과 귀는 열려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해한다.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기회만 된다면, 이를테면 가정에서 조금만 더 자기를 믿어주고 (?) 지원해준다면 (?) 자기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암묵적으로 믿는다. 그런데 웃기지 마라. 당신은 슈퍼히어로도 구세주도 아니다. 

파국으로 치닫는 사람의 심리는 얼추 비슷한 양상을 띤다. 가장 단순하고 쉬운 진리를 어떻게 해서든 뒤틀고 특별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자기에게만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상황을 만든다. 직장과 교회에서의 삶 때문에 가정에서의 삶에서 자꾸 불화가 생기고 망가지고 무너지고 있다면,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라면 현재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점검하고 기본적인 가정에서의 삶을 회복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파국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그 가당치도 않는 논리를 더욱 굳세게 믿게 되며 결국 가정을 버리게 된다. 성공지향적인 유명한 사람들의 가정에서 이혼이 많고 그들의 자녀들이 건강하지 못한 정서를 가지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자기애의 은밀한 욕망은 모든 걸 삼킨다. 당신은 직장과 교회의 삶이 잘 되고 가정에서의 삶만 놓친 게 아니다. 가정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다음으로 무너질 곳은 직장과 교회에서의 삶이다. 자기무덤 파는 일을 자기만 모르는 엘리트들의 비애는 정말 답이 없다. 그들의 유아적인 욕망으로 희생당하는 주위의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나는 무척이나 안쓰럽다. 폭력을 그만 휘둘러라.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바람  (0) 2020.09.16
소수 민중 리더의 착각과 타락  (0) 2020.09.16
깊은 척하는 얕음  (0) 2020.09.07
직언: 상처와 위로, 그리고 그 한계와 자기애  (0) 2020.09.07
기원  (0) 2020.09.07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