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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작은 바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9. 16. 07:26

작은 바람.

밥벌이로 생물학을 연구하며 살아가는 나는 요즈음 꽤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덕분에 글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책 읽을 여유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쓰기로 한 책 한 권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짬이 날 때마다 비공개로 내 블로그와 하드디스크에 흩어져있던 글들을 하나로 모아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보며 퇴고 중이다. 처음 하는 일이라 낯설기만 하다. 그리고 여전히 의문이 든다. 과연 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면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까. 적어도 출판사에게 적자를 안겨다주진 말아야 할텐데, 하는 염려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나중에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가장 먼저 마무리되고 있다. 지금 한창 논문 막바지 단계다. 곧 서브미션할 예정이다. 바라기는, 수 개월 안에 출판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진행하고 있는 세 개의 큰 프로젝트 중 하나로부터 해방받게 된다. 어딘가에 매이고 또 해방받고, 하는 반복된 사이클은 연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침내 논문을 쓰면서 해방받을 나는 또 다시 새로운 것에 매이게 될 것이다. 그게 과학자의 운명이다. 똑같은 것 같지만 다른.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일부러 맞춘 건 아니지만, 쓰고 있는 책과 논문이 아마도 내년 초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지 않을까 싶다. 내 안의 두 자아가 동시에 무언가를 뱉어내고 진화할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책과 논문을 모두 출판한 후 과연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게 될까. 제발 지금보다 더 교만해지지만 말았으면 한다. 그건 지금도 충분하니까.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변해간다. 진화해간다. 역동적인 일상의 순간기울기값은 아마도 거의 제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견뎌내는 삶인 줄 알지만, 그 견딤조차도 움직이는 선상에 놓여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 살아있다는 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뿐. 조금만 더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조금만 더 타자와 세상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비로소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언제나 게걸스러운 이유는 자신만 멈춰있다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알아챈다는 건 나뿐만이 아닌 타자와 세상과의 조화를 인지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변해간다는 것은 진화해간다는 것이고, 그 진화는 나를 향하지 않고 타자와 세상을 향해야 맞다. 내년을 기약하고 있는 책과 논문의 출판으로 나도 부디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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