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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소수 민중 리더의 착각과 타락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9. 16. 07:25

소수 민중 리더의 착각과 타락.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거머쥔 성공이 알고보니 가진 자들의 호의와 적선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의 비참함은 얼마나 끔찍할까. 하지만 무어라 변명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사람 역시 마음과 몸을 다하여 충실히 전 과정에 임했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선 돌이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지간해선 자신이 걸어왔던 그 길이 아무 모순이 없다고 끝까지 믿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부정하고 또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순인 이유는 먼저, 자기자신도 마이너리티에 속하면서 같은 마이너리티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스스로 의식화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가 어쨌거나 성공한 뒤 어디서나 자랑할 건 오직 자신이 했던 치열한 노력밖에 없다. 꼰대 중 왕꼰대가 된다. 한 마디로 마이너리티의 굴레에 승복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그 굴레를 과감하게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과거는 찬양될 수밖에 없으며, 여전히 마이너리티라는 경계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향한 날선 험담도 거침없이 남발한다. 노오오력이 부족하다고 말이다. 마치 사회구조적인 보이지 않는 차별은 그저 음모론의 일환인듯, 정직한 땀을 흘린다면 마이너리티에 속했다 할지라도 누구든 자기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증인으로 내세우며 성공담을 떠벌리고 다닌다. 이 상황이 슬픈 이유는 누군가는 분명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보며 조용한 비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당신을 그 성공의 자리로 올려준 그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모순인 두 번째 이유는, 성공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숨기거나 무시하고, 주류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포장한 뒤, 철저히 그것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처세술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끌어들이고,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수식어를 가져다 쓰면서 말이다. 그러나 원래 자기자신의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주류사회에서 원하는 상으로 탈바꿈한 뒤 그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과연 그렇게나 자랑스럽고 옛 동료들에게 함부로 꼰대질을 할 만한 것일까. 성공이란 의미가 주류사회로의 진출을 의미할 뿐이라면, 과연 그 성공을 참된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가면무도회를 가장 훌륭하게 소화해낸 사람의 끝엔 과연 어떤 결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사람은 죽는 날까지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철저하게 자신의 본 모습은 잊혀진 상태로 묵혀두면서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삶이 가능하기나 할지는 의문이다. 인간은 언젠가는 외로이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노오오력을 강조하며 성실한 땀이 언제나 승리를 가져온다는 교과서를 읊어대는 꼰대들 중 가장 꼴보기 싫은 꼰대는 바로 위에 언급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언제나 자신의 성공담을 즐기며 그것이 누구에게라도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먹히는 방법처럼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들. 언제나 자신이 옳은 사람들. 언제나 자신이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처럼 스스로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게 겉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객관적인 업적 때문에 함부로 직언을 하지 못해 아첨 섞인 말만 평생 듣게 되는 사람들. 신물난다. 당신이 제일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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