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읽기와 쓰기

칼과 펜: 무사와 문사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10. 7. 04:33

칼과 펜: 무사와 문사.

 

과거에 썼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대부분의 경우 얼굴이 붉어진다. 이것밖에 못 썼나 싶은 글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유치한 표현인데도 뭔가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포장하는 잔기술이 눈에 밟힐 때마다 난 수치심을 느낀다. 더욱이 그 당시의 나는 그 글에 대해서 나름 자신감을 가졌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두 번 죽는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진보의 증거라며 격려를 보낼 것이다. 나 또한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느낀 부끄러움은 단순히 진보로도 해석될 수 있는, 그런 모호한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 글들에서 나의 가식과 오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고, 찾아올 때면 언제나 예기치 않은 기쁨을 선사하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그때마다 흥분을 느끼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본능의 분출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문제는 그 분출이 누군가에겐 칼이 되어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제 지인과 무사와 문사에 대한 자세를 잠시 얘기했었다. 무사는 칼을 뽑았을 때조차 원하지 않으면 베거나 찌르지 않을 수 있다. 다시 칼집에 집어넣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무사의 잘 든 칼은 타깃이 분명하다. 아무렇게나 칼을 뽑아 휘두르는 건 개망나니일 뿐 무사라고 할 수 없다. 무사의 칼은 그 타깃만을 향해 사용되고, 그 타깃에게만 상처를 가한다. 그러나 무사의 칼과도 같은 문사의 펜은 언제나 원하지 않는 타깃을 가진다. 숙명이다. 펜을 뽑아 휘두르게 되면 언제나 누군가는 상처를 입게 된다. 그 목적이 선하고 바른 것이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문사의 펜은 무사의 칼보다 더 위험하다. 

펜으로 휘두른 글이 폭력이 되리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글의 숙명이라는 점에서 나는 글의 본질적인 부분을 탓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자세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결론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는 건, 문사의 펜은 무사의 칼과는 달리 그 타깃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썼던 글을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게 될 때 느끼는 수치심은 결국 남이 아닌 나를 찌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사의 칼은 칼집에 도로 집어넣으면 되지만, 문사의 펜은 글로 만들어진 이상 도로 집어넣을 수가 없다. 독자가 아무리 적은 경우라도 가장 먼저 된 독자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한 번 휘두른 펜은 적어도 한 명의 타깃에겐 일격을 가하게 된다. 언제나 존재하는 타깃인 나 자신. 글은 시간이 흘러도 남아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를 찌르고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찌르게 된다. 진보라고 둘러대며 슬쩍 넘어가기엔 아무래도 좀 무거운 구석이 있다.

함부로 뽑지 않는다. 뽑았다면 누군가는, 적어도 자기 자신은, 상처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책임감이랄까. 의무랄까. 글을 쓴다는 건 단순한 표출이 아닌 공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제 조금 깨닫는다.

'읽기와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 글 연습하기  (0) 2021.02.03
좋은 글이란?  (0) 2021.01.26
읽고 쓰기의 서글픈 변질  (2) 2020.09.21
여행  (0) 2020.08.04
독서의 맛  (0) 2020.08.03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