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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독서의 맛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8. 3. 23:09

독서의 맛.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편안한 의자에 앉아 여유있게 책을 읽는 낭만은 한낱 공상에 빠진 배짱이의 바람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인간의 한계를 사실적으로 아는 자의 여유다.

주중엔 ‘주말이 되면 하루종일 빈둥대며 책이나 읽어야지’ 하는 일탈적 상상으로 위로를 받다가도 막상 주말에 되어 시간이 나서 책을 손에 들게 되면 자신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한계와 시간의 제약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내 하루종일 읽을 수 없다는 현실을 체감하게 되고, 자신은 아무리 집중을 한다해도 많게는 수백 페이지, 적게는 달랑 몇 페이지만을 읽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일뿐임을 알게 된다. 수백 페이지를 읽은 경우, 앞서 읽은 부분의 내용이 벌써부터 흐릿해진다는 사실까지 경험하게 되면 그야말로 그 하루는 절망적이다.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처절한 현실만이 앙상하게 남는다. 고작 한 권도 읽지 못한 하루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익숙해지고 이를 겸허하게 사실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제서야 책을 읽는 행위에 구속되지 않고 그 위에 설 수 있다. 더 이상 쫓기지 않고 즐길 수 있으며, 책 읽는 데 쓰인 시간과 그날 읽은 분량에서 해방받을 수 있다.

독서에 어떤 목적이 부여된다면 과연 그게 진정한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진정한 독서의 다른 이름은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기로 삼는다면 그 독서는 여유가 아닌 일이 된다. 수단이 된다. 수단이 된 독서는 순수한 즐거움을 주기보단 그저 정보습득의 방법일 뿐이고, 급기야 누군가의 요약이나 책이 아닌 동영상과 같은 자료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기도 한다. 수단이라면 효율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굳이 뭐하러 그 두꺼운 책을 일일이 다 읽냐고, 그냥 줄거리 파악하려면 요약본이나 구해서 보면 되지 않냐고 조언하는 사람들. 혹은 유튜브 동영상을 대신해서 보면 훨씬 이해도 쉽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고 링크를 알려주는 사람들. 그들의 고마운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독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나는 느리고 철저히 비효율적이고 때론 시간낭비로 여겨지기도 하는 이 독서의 매력과 맛을 아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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