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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연습하기.
일반적으로 한 문장보다는 두 문장 쓰기가 어렵다. 문장 간 연결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한 단락보다는 두 단락 쓰기가 어렵다. 단락 간 연결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 단락으로 이뤄진 긴 글은? 당연히 더 어렵다. 일반적으로 짧은 글보다 긴 글이 쓰기 어렵다 (물론 긴 글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사람들에겐 짧은 글 쓰기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다른 문제다). 문장 간, 단락 간, 나아가 전체 글의 흐름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두 문장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멋들어지게 쓸 줄 알면 자신이 글 좀 쓴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 대표적 예가 마치 자신이 지혜자가 된 것처럼 아포리즘으로 툭툭 진리를 선포하듯 써대는 짧은 글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글 중에 우리가 진리를 받아 적듯 경이에 찬 자세로 읽어야 할 가치가 있는 글은 얼마나 될까? 과연 자신의 고유한 생각과 사상이 압축되어 있기나 한 걸까? 만약에 그렇다면, 이 시대엔 왜 이리도 지혜자들이 넘쳐 난다는 말인가.
이런 현상에 대해서 나는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아포리즘인 척하는 그런 글들을 보면 이제 나는 저절로 피하게 된다. 대부분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들을 퍼다 나르면서 마치 자기가 생각해낸 것처럼 멋쩍게 쓴 글을 읽다 보면 나는 마치 인간의 원죄를 목도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리고 이런 글을 써대는 사람은 대부분 이렇게밖에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긴 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기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사람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생각은 짧고 결론이 빠른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이미 그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니면 논리적인 생각을 깊게 할 줄 몰라 대충 본인의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성급히 일반화를 시도한 뒤 미사여구나 그럴듯한 스타일로 자신의 글을 포장하는 사람. 이미 써진 짧은 글로 글쓴이의 출처를 알긴 어렵다. 다만 확실한 차이는, 전자는 긴 글을 충분히 쓸 줄 안다는 점, 후자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전자의 짧은 글은 함축적 의미가 담긴 아포리즘으로 읽을 수도 있을 테지만, 후자의 그것은 그것을 쓴 자기 자신조차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 있다.
“난 긴 글이 싫어. 짧은 글이 좋아.”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둘 중 하나다. 이미 긴 글을 많이 접해보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짧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긴 글을 읽고 이해할 능력이 모자라 특별한 이유 없이 피하고는 그 사실을 감추고 자신이 마치 전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 눈치챘다시피 이 단락에서 전자, 후자는 앞 단락에서 전자, 후자와 같은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긴 글 쓰는 연습은 아무쪼록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정리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이라고 떠벌리고 있던 것들의 대부분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주워 들어 덕지덕지 대충 짜깁기된 조각들로 이뤄졌다는 점을 본인이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긴 글 연습은 곧 성찰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무조건 길게 쓰자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짧은 글들이 긴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의 정리된 생각으로 써졌으면 한다. 그러면 적어도 허영의 거품은 지금보단 많이 사라질 것 같고, 밑도 끝도 없는 비난으로 일삼는 글도 많이 사라질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앵무새가 되어 재잘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글을 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긴 글 쓰는 연습은 진정한 공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타성에 젖은 멍청이나 꼰대가 되지 않는 쉽고도 돈 안 드는 비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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