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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새로운 소설책을 고를 때면 난 언제나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 된다. 약간의 긴장이 깃든 설렘과 조심스런 기대를 가지고서 난 나의 상상력과 감상성의 문을 조용히 열어젖힌다. 입은 다물고, 눈은 귀가 되어 저자가 묘사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사람의 내면까지 침투하여 비로소 타자를 공감한다. 타자가 되어보는 것, 어쩌면 소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여행이지 않을까.
신형철이 추천한 소설을 일 년 남짓 걸려 틈나는대로 계속 읽어오고 있다. 정확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그는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훌륭한 글을 써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적어도 한 가지는 통한다고 느끼는 까닭은, 그가 추천한 소설이 한 번도 내 시선을 빼앗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나보다 많이 이 세상에 보석처럼 흩어져있는 다양한 소설을 접하는 그의 취향과, 과학이라는 도구로 출세라는 허황된 꿈을 좇다가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독서의 맛을 조금 보며 나와 타자와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나의 취향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조금은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할만큼 기분이 좋기도 하다.
언젠가 그가 어느 강연에서 추천한 책 중 하나를 마침 중고로 손에 넣게 되었다. 서보 머그더의 ‘도어 (The Door)’라는 작품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의 헝가리 작가가 내게 선물한 세상의 어느 즈음에 나는 여전히 머물고 있다. 아직 여행 중이다. 지금은 피곤할 정도로 여행을 즐기다가 잠시 숙소로 돌아와 그간 찍었던 사진들을 들춰보고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끄적이는 시간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여행이 맛있다. 소설 읽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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