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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읽고 쓰기: 감지하고 반응하기, 민감하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2. 5. 14:45

읽고 쓰기: 감지하고 반응하기, 민감하게.

읽다 보면 쓰게 된다. 독서하다 보면 어떤 한 단어나 한 문장에 이끌려 읽던 책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소위 말하는 영감이나 시상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가끔은 이런 순간이 잦아서 진도를 내기 힘들 때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영감 혹은 시상을 놓치며 살고 있을까? 과연 그런 것들은 작가나 시인 혹은 예술가의 전유물일까? 

그것들은 빛나지 않는 일상의 언어와 함께 끊임없이 허공에 뿌려진다. 그것들을 하나라도 더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분명 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무뎌진 우리의 더듬이는 빛을 잃었다. 사용하지 않아서다. 나는 그것을 감히 죄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다. 놓치고 나중에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느껴지는 죄책감은 이를 잘 반영한다. 일상이라는 허공에 뿌려지는 소중한 의미들, 그리고 그것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 하루를 또 부유하는 우리의 삶. 우리는 무엇을 쫓고 있으며, 무엇에 쫓기고 있는 것일까? 이게 과연 인생이라는 것의 실체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인생 허무를 당연한 듯 떠드는 인생의 베테랑들을 지혜자라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육신엔 기름이 꼈고, 그들의 영혼은 텅 비었다. 나는 인생을 다 산다 해도 그들처럼 허무라는 종착역에 이르고 싶지 않다. 그런 노련함은 일찌감치 사양하겠다. 차라리 꿈을 가진 아이로 남겠다.

우리에게 더듬이가 있음을 인지했으면 한다. 그것은 물이나 기름으로 닦는다고 해서 빛나지 않는다. 빛을 내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사용하기를 연습하자. 지금도 퇴색되어 허공에 뿌려지고 있는 소중한 의미에 빛을 회복시키자. 감지하자. 보고 느끼자. 냄새 맡고 맛보자. 이 모든 행위는 곧 읽는 것, 즉 ‘읽기’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사진기를 들고나간 작가처럼, 때론 노래하는 시인처럼, 때론 경이에 찬 아이처럼 우리의 일상에 의미를 발견하고 감지하자. 그러면 언젠간 자연스레 반응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 순간이 곧 쓸 때다.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혼자 성찰한답시고 시작했던 묵상이 공상과 망상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런 예기치 못한 기쁨의 순간은 좀처럼 우릴 찾아오지 않는다. 시작은 내부가 아닌 외부다. 내부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할 뿐이다. 외부의 빛을 감지하지 않은 채 내면에 침잠하게 되면 만날 대상은 공허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잘 읽어야 하는 이유이자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이유다. 책만 읽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우린 일상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작고 보잘것없는 일상을 읽어내는 일. 이런 걸 그저 낭만이라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인생은 빛나고 있냐고. 빛을 잃은 허공 속에 쌓여가는 먼지. 그 위에 앉아 인생은 다 그런 거지, 하며 인생 다 살아본 사람처럼 지껄이는 건 결코 지혜가 아니다. 

가만히 놔두면 계속해서 차오르는 공허는 곧 우리 내면세계의 실체다. 빛을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잘못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빛이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무뎌진 게다. 무뎌짐은 죽음이다. 민감해지자. 소망을 잃지 말자. 끊임없이 읽자. 관찰하자. 책을 읽고, 일상을 읽고, 자연을 읽자. 그리고 타자를 읽자. 한 걸음 떨어져 우리가 밟아온 발자국을 뒤돌아보자. 아마 무언가가 쓰고 싶어질 것이다. 그때 쓰면 된다. 마치 책을 읽다가 무언가가 쓰고 싶어질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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