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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살아있는 글: 읽기와 쓰기의 공명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2. 6. 17:17

살아있는 글: 읽기와 쓰기의 공명.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질 때가 자주 있지만, 쓰다 보면 계속 쓰고만 싶어질 때가 많다. 좀처럼 읽는 모드로 복귀하기가 어렵다. 이런 흐름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나는 계속 무언가를 쓰고 있다. 책은 한쪽에 멀찌감치 치워둔 채로.

 

위험한 순간이다. 나 같은 경우, 이미 여러 번 겪어봤는데도 이런 순간을 맞이할 때면 여전히 나는 긴장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인간 본성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낀다.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교만해지는 내 안의 나. 또다시 내면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자기중심적인 자아. 읽지 않고 쓰기만 하려는 나. 섬뜩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읽지 않고 쓰기만 고집할 경우, 그 쓰기의 우물은 금세 바닥 나기 마련이다. 시간문제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어느 날 도적처럼 찾아온다. 그때가 오면, 중언부언하면서도 마치 그게 아닌 것처럼 꾸며대는 조잡한 기교만 부리게 된다. 그러고서 그게 글쓰기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글은 죽은 글이다. 글자 수와 형식을 맞췄고, 사람들에게도 읽히지만 금세 잊히는 글. 어쩌면 안 쓰느니만 못한 글. 공해와도 같은 글. 

 

글이 살아있기 위해선 그 안에 영감이 깃들어야 한다. 그것은 빛이다. 그래서 반짝인다.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무언가 다르다. 빛은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연습할 때 주의해야 할 한 가지는 끊임없이 읽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건 저절로 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이 글 좀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엔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은밀한 자아도취의 길을 몰래 밟기 시작한 사람은 아무래도 외부의 빛이 아닌 내부의 무언가를 계속 찾는 법이다. 그게 교만 인지도 모른 채로. 

 

물론 살아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내부의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무언가를 여는 열쇠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 빛, 그러니까 영감이 그 열쇠다. 외부와 내부의 공명이 일어나야 글이 살아난다. 

 

왜 쓰지 않고 읽느냐는 질문은 쓰기와 읽기의 공명을 무시한 처사다. 쓰기 위해 읽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반대로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둘은 언제나 균형을 이뤄야 한다. 어쩌면 쓰기와 읽기는 둘이 아니라 하나일지도 모른다. 

 

잘 쓰기 위해선 읽어야 한다. 글 쓰는 기계가 된 사람에게선, 타고난 글쟁이가 아닌 이상, 살아있는 글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두 글은 괜찮을 수 있을지 모르나 곧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읽고 반응해야만 글이 숨을 쉰다. 외부와 내부의 공명이다. 살아있는 글을 쓰기 위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신호와 자극 읽기를 게을리하지 말자. 저항하자. 읽지 않고 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펜을 놓고 책을 들자. 겸손해지자.

 

* 그림은 헌팅턴 라이브러리 갤러리에서 캡처.

https://emuseum.huntington.org/objects/48014/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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