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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자발적 매임: 자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3. 12. 07:39

자발적 매임: 자유.


평일에는 많으면 짜투리 시간을 포함해서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읽거나 쓸 수 있다. 물론 남아도는 시간이 아니라 나름 애써서 확보한 시간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것을 알아채고 소중히 아끼는 자의 몫이다. 다만 너무 강박이 될 정도로 시간에 매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러나 적당히 매이는 건 나쁘지 않다. 자발적 매임은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자의 아름다운 선택이다. 


읽고 쓸 건 많은데 제한된 시간에 모두 다 할 수가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날그날 읽고 싶은 글과 쓰고 싶은 글이 다르다. 조금 집중이 필요한 고전문학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때가 있는가 하면, 잠시 짧은 여행을 다녀오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손에 들기도 한다. 종종 상상력과 허구에 기반을 둔 문학작품이 아닌 논리정연한 명제적 진술을 담고 있는 인문, 신학, 철학 관련 책을 읽을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 후자의 경우는 마음이 자연스레 끌리지는 않는다. 의지가 필요하고, 함께 읽어나가는 동지들의 모임이 필요한 이유다. 적당한 선에서 부담을 짊어지는 건 지혜에 다름 아니다. 꼴리는 대로 사는 게 자유가 아니듯이. 


한때 글 좀 쓰는 목사나 선교사 혹은 여러 기독교 작가들이 쓴 책을 습관처럼 읽어댈 때가 있었다. 나의 믿음과 신앙의 현상유지를 위해선 그럭저럭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책들만 읽을 땐 성장에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말은 익숙함을 경계하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편하다는 생각이 들고 거기서 만족을 느끼며 눌러앉을 때 본의 아닌 교만이 내면에서 고개를 쳐든다. 선과 악을 자기의 유익에 따라 판단하게 된 인간이 익숙하고 편하다는 건 그 영역 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자신이 어느 정도 점령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자기 세상에 되었기 때문이다. 도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죽은 자와 다름 없다. 교만은 정착할 때 생겨난다. 떠남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순종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부족함에서 만족을, 제약에서 무제약을, 유한에서 무한을, 갇힘에서 해방을, 매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일이라고 믿는다. 


소설 습작을 하기도 하고, 나의 두 번째 책을 위한 글을 쓰기도 한다. 페북에 올리는 건 감상문을 제외하곤 모두 짜투리 시간에 쓴다. 쓴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나에게 읽고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고, 선택할 수 있으며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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