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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잡념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4. 24. 05:56

잡념.

불길함마저 느껴지는 짙은 회색 안개에 싸인 산을 마주한다. 이성을 통과하지 않고 전해지는 이 무언의 압박. 나는 다시 잠잠해진다. 압도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나는 여전히 막막하고 서툴기만 하다.

큰 발표를 하나 마치고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에 책을 들었다. 여전히 논증이나 변증을 주재료로 하는 명제적인 글은 읽고 싶지 않다. 날카로운 이성의 통쾌함에 대해 점점 회의적이 된다. 지식은 늘어나고 아는 건 점점 많아지지만 생각할 거리는 늘 산재해 있다.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무한대에서 헤엄치는 기분이 드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힘을 빼게 된다. 무한대의 존엄을 지켜주기로 한다. 신비로 남겨두기로 한다.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도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어떠한 분야라도 비슷한 것 같다. 어느 정도까지 들어가서 파헤치면 그 분야의 주요 흐름과 사상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굳이 퍼센티지로 말하자면, 약 85퍼센트 정도까지는 본인의 의지와 성실함만 갖춰진다면 특별한 전문지식 없이도 전체를 대충 관망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머지 15퍼센트의 사다리를 오르는 건 전문가의 몫이다. 그 분야에서 밥벌어 먹는 사람이라든지 평생 그 분야에 몸을 담아 뼈가 굵은 사람이라든지, 뭐 이런 소수의 사람들의 영역으로 놓아주고 존중해주면 된다. 85퍼센트까지 비전문가가 올라갔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헛소리에는 휘둘리지 않게 된다. 나는 그거면 된다고 본다.

우리 중에는 85퍼센트에서 1퍼센트 더해서 86퍼센트 더 알려고 애쓰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런데 85에서 86까지의 단 1퍼센트가 어쩌면 0에서 85까지 걸렸던 시간과 노력 만큼 요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닫고 나서 나는 85퍼센트에서 멈추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이상은 단 1퍼센트라도 집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배움이 집착이 되면 욕심이 생기고 권력을 탐하게 되기 쉽다. 순전한 배움에서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15퍼센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늘 겪는 일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정치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나는 관심 없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자꾸 요즘엔 소설을 집적거린다. 철학책도 신학책도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자세가 거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아는 것이 100퍼센트가 아님을 스스로 알고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만큼 얘기할 수 있고, 그 이상은 모른다고 고백하는 건 겸손이지 교만이 아니다.

소설은 이런 면에서 열려있다. 무한대로 열려있다. 이 바닥에서는 85퍼센트라는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어쩌면 나는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상상력의 광활한 세계. 모든 철학과 신학을 포함한 명제적 지식들이 상상력과 결합하여 비명제적 지식까지도 능히 건드려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세계. 나는 소설을 사랑한다. 한계를 가진 인간이 쓸 수 있는 최고의 형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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