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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에세이.

오가와 요코 저, ‘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를 읽고.
(책의 부제: 소설가의 쓰는 일, 걷는 일, 사랑하는 일)

감상에 앞서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이 책을 읽고 오가와 요코가 좋아졌다. 나는 오가와 요코의 글에 빠져들었고 매료되어 버렸다. 그녀의 글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의 글은 계속 읽고 싶은 글, 아끼면서 읽게 되는 글, 옆에 두고 싶은 글, 또 읽고 싶어 지는 글이다. 살면서 이런 글을 만난다는 건 평소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맞이할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여러 작가가 쓴 수십 권의 산문집 (혹은 에세이집)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내 마음에 담기는 산문집은 없었다. 아무렴, 에세이는 이렇게 쓰는 거지, 하며 글을 읽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에세이라는 장르를 비로소 처음 접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틀간 책을 읽으며 나는 오가와 요코의 눈과 귀와 마음이 되어 내 주위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따스한 시선은 책 밖으로 걸어 나와 숨을 쉬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와 내 주위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있던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잊혔던 것들이, 소멸하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 조용히 빛을 발하게 되었다. 감사했다. 회복이었다. 나도 모르게 무뎌지고 타성에 젖어가던 나를 멈추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만들어주는 묘약이었다. 책 한 권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충만하게 만들고,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까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또 한 번 글의 힘을 실감하며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꼭지를 다 읽을 때마다 내 마음 한편은 잔잔한 감동으로 무릎을 치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은 자괴감에 빠져 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쉬이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어찌 이리 따스하면서도 세밀한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는지, 어찌 그것을 놓치지 않고 조용히 내면화하여 자기 객관화와 절제를 거치고 그 이면에 담긴 깊은 의미까지 통찰하여 누구라도 읽기 쉬운 언어로 고스란히 번역해낼 수 있는지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감탄은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가뿐히 뛰어넘는 정도였다. 이윽고 나의 모자란 글쓰기 역량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내가 도무지 써낼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고, 나는 좌절했다. 물론 이 좌절은 이내 나의 글쓰기에 대한 큰 자양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세 달 전 읽었던 그녀의 대표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고 나는 그녀의 잔잔하고 편안한 문체에 적잖이 마음을 빼앗겼었다. 감상문에도 밝혔듯이 이미 그때 반드시 기억에 남을 작품임을 예감했었다. 그 여운이 남아 그녀의 이름으로 작품을 검색하던 중 지난달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렜다. 그런데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다.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에세이는 소설과 달리 작가의 직접적인 입김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체나 사상 등을 알고 싶다면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유용하다. 그래서 나는 별다른 조사 없이 보관함을 거치지 않고 그 책을 곧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이 책을 다 읽고 돌이켜볼 때 그때 나의 선택은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잘한 것이었다.

에세이는 시선이다. 작가의 시선을 중간 매개체 없이 느낄 수 있는 글이 바로 에세이다. 에세이를 읽고 감동을 받는다는 건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감동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 시선을 기꺼이 따라가며 사소한 일상을 함께 관찰하고 성찰하고 통찰하며 위로와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글은 마음에 담기지 않은 채 버려지는 간판과도 같은 글이 된다. 독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휘황찬란한 글, 온갖 양념이 버무려져 첫맛은 강하나 계속 먹을 수 없는 글, 아아, 이런 글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자본주의의 논리가 글 속에도 깊숙이 침투하여 꽈리를 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오가와 요코와 같은 글을 만나고 먹고 하나가 되는 경험은 가뭄 가운데 내린 한 줄기 비처럼 귀하고 소중한 양식일 것이다. 이제 예순이 다 된 오가와 요코가 조금 더 많이 글을 써주면 좋겠다. 나는 오가와 요코의 팬이 되었다.

#티라미슈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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