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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점에서.
살다 보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금세 마음이 무거워지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진다. 진정한 내 모습과 보여야 하는 내 모습, 그리고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며 고뇌하게 된다. 그 간극을 메우려는 이성의 치열한 합리화 과정은 두통을 가져오기도 하고 식욕을 떨어뜨리기도 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진 감정에 조금씩 다가서게 되는데, 그건 바로 열등감이다.
조용한 열등감을 마주하는 순간.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굴곡진 인생의 곡선은 언젠가는 낮은 점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순간이 전체 곡선에서 의미심장한 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시 높아질 수도 있고, 더 낮아질 수도 있으며, 한동안 그대로 지속될 수도 있고, 혹은 멈추게 될 수도 있다.
어렸을 적 그 점을 만날 때면 다시 오르고 싶다는 목표와 함께 꼭 오를 것이라는 강한 바람을 가지곤 했다. 그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여겼다. 주위 사람들의 격려도 다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나 여러 번 겪다 보니 마음가짐이 점차 바뀌게 되었다. 처음엔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조금은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가 비로소 내가 철들기 시작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예전과 달라진 건 위를 향하는 목표와 바람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낮은 점이 곤고한 때임은 분명하지만, 그걸 실패라고 규정하는 관점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동시에, 그건 기나긴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열등감과 비겁함의 압박을 견뎌내지 않는 성숙은 없다.
왜 나는 어떤 특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급기야 어느 것이 진정한 내 모습인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겁하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나를 잘 모른다. 특히 자신감 있게 자신의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정도는 덜하지만 또다시 열등감에 빠져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아직 나는 내가 보여주길 원했던, 혹은 보였어야 하는 내 모습,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내 모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 되고, 진정한 내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다는 말도 된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은 언제나 나를 잡고 있다. 뒤늦게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야 이런 것들을 깨닫고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생의 낮은 점에 다다랐을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건 다시 오르려고 애쓰는 것보단 진정한 자기 모습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고한 낮은 점을 숱하게 지나면서도 여전히 자기 객관화에 취약한 사람, 여전히 자기 안에 갇힌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쪽같이 자기 객관화에 이른 사람처럼 보이는 위장술까지 겸비한 영악한 사람, 그 위장이 자신의 진정성이 되어버린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혼란스럽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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