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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무너진 옛 성터를 보고 마음에 무언가 묵직한 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어른이다. 쇠락의 풍경이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당신도 이제 그 길에 들어섰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당신도 이제 어딘가에 있을 끝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아침 햇살보단 지는 저녁노을을 보고 잠시 멈춰 서서 아련함에 젖는다면 당신은 어른이다. 소멸해가는 것들의 마음을 이제 조금 알기 때문이다. 잠시 반짝이다 가버리는 많은 것들.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을 당신은 깨닫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정체된 것 같은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멈추지 않았는데 멈춘 것만 같고, 움직이고 있는데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다고 애써 믿으려 했지만, 결국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반쯤은 좌절감에 반쯤은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쇠락과 소멸의 끝은 지평선과 같아서 가도 가도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그 끝을 잡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제 어른인 당신은 그 끝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본다. 포기가 아니다. 한계를 알아버린 자의 지혜인 것이다. 당신의 따스한 눈은 이제 현실을 알고 현실을 뛰어넘어 현실을 끌어안는다. 깊은 눈의 소유자가 된다.
당신은 잊었던 소망을 다시금 붙잡는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허망함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소망함에 남은 인생을 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밑바닥을 들여다봤다고 해서 소망을 잃을 필요는 없다는 지혜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사소한 일상에서 숨겨진 빛을 찾아내고 그것을 노래한다. 마침내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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