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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한 사람의 여백을 보기 전까지, 그 여백을 마침내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기로 합니다. 세상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반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둘이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 차이가 어떤 한 사람을 가장 잘 말해주는 지표일지도 모릅니다. 드러내지 않고 드러나는 그 무엇. 제가 여백이라고 부르는 이 공간.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모습들. sns에 올리지 않는, 삶의 무게가 실린 현장들. 드러내는 것들만을 보고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과연 그 사랑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전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책임질 수 없는 말로 소급되지 않을까요? 무책임한 사랑, 원나잇으로 끝나고 마는 헤픈 사랑, 가벼운 사랑. 저는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가진 진정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이유 역시 사람의 진정성 담긴 마음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진정성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자주 잊곤 합니다. 그 무게의 중심은 드러내는 모습에 있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모습에 있습니다. 바로 여백이지요. 그 여백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형편없는 모습들마저도 견디고 안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린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받기 원하면서도 타인에겐 자신의 여백을 숨기기에 바쁩니다. 혹시 날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인 염려 때문이겠지요. 찰나의 모습만을 보고 따르는 사람을 경계하시길 바랍니다. 드러내는 모습만을 보고 열광하는 사람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눈이 깊은 사람은 깊은 물과 같아서 쉽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잔물결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드러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여백에 방점을 두고 그것들을 더 아름답게 가꾸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은 드러낸 것들의 균열을 통해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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