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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얼굴: 축적된 시간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11. 29. 12:18

얼굴: 축적된 시간

사람의 얼굴에서 시간을 읽는다. 시간은 앞이 아닌 위로 흐른다. 뒤로 사라지지 않고 아래로 축적된다.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흐른 그 축적된 시간이 형체를 갖고 나타나는 곳이 바로 사람의 얼굴이다. 성형학적인 겉모습에만 휘둘리지 않는다면, 그 1차 벽에 차단되지 않는다면,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과거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충실한 문이 되어준다. 이성보다는 직관으로 인식되는 하나의 문을 접할 때마다 우린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얼굴은 세상의 입구다. 

과거가 어떻든 현재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종종 오해된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독립적인 것처럼 이분법적으로 여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어떤 사람인지’라는 말속에는 그 사람의 과거가 포함된다. 단, 과거에 비도덕적으로 살았는지 불의하게 살았는지, 혹은 어떤 사건사고를 저질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과거를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거나 그것을 외면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축적된 시간이 만든 깊은 우물로부터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그 물이 쓸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의 의미다. 

과거의 망령뿐만이 아니다. 과거의 영화 역시 사람을 좁게 만든다. 망령이든 영화든 과거에 잡혀있는 사람은 현재가 없는 사람이다. 현재를 살아내는 사람은 과거를 덮거나 지운 사람이 아니다 (사실 그럴 수도 없다). 쓰든 달든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고 보듬어 안으며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축적된 시간으로부터 물을 길어 올리는 사람이다.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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