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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에서 벗어나기

차준희 저, ‘구약이 이상해요’를 읽고
(책의 부제: 오경 난제 해설)

우물 안에 갇혀 있을 때, 구약은 나에게 전래 동화 같은 이미지에 불과했다.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구약은 주로 예화로 사용되었다.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며, 구약에서 기다리던 메시아 예수님이 신약에서 선지자, 제사장, 왕의 삼중직을 모두 행함으로써 생명의 길을 여시고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흑암의 세력을 꺾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은 불필요하다는 암묵적인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구약에 대한 설교는 창조과학에 기반한 창세기 해석, 원죄 개념이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가인과 아벨의 서로 다른 제사에 대한 해석, 인류 첫 번째 살인자 가인에 대한 해석, 노아의 홍수와 무지개에 대한 해석, 바벨탑 사건과 서로 다른 언어의 등장에 대한 해석, 족장 시대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관련된 예화들에 대한 해석, 꿈꾸는 자 요셉에 대한 해석, 모세의 탄생에 이은 유대인 신앙의 근본 뿌리를 이루는 출애굽 사건에 대한 해석 (특히 열 가지 재앙과 유월절에 대한 해석),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장면과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을 앞세워 만들었던 금송아지 사건, 정탐꾼 중 믿음의 고백을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 전쟁을 지휘했던 여호수아, 나실인이자 머리카락 길이에 따라 영적 파워를 달리 했던 삼손, “어머니가 가는 곳에 나도…”라고 했던 룻, 한나의 간절한 기도로 태어나 나실인으로 자란 사무엘, 첫 번째 왕 사울, 그에 이은 다윗과 솔로몬,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 엘리사의 도움으로 문둥병이 나은 나아만 장군, “죽으면 죽으리다”라고 했던 에스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고난을 당했던 욥과 그의 세 친구 이야기, “모든 게 헛되다”라는 말로 압축되곤 했던 전도서 해석, 마른 뼈가 살아나 군대를 이룬 장면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에스겔, 하루에 세 번 정시 기도를 잊지 않았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특히 풀무 불 가운데 살아남은 이야기),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요나, “무화가 나무 잎이..” 노래가 생각나는 문장이 등장하는 하박국서… 이 정도의 대표적인 예화들로만 이뤄졌을 뿐 창조, 죄, 제사, 거룩함, 하나님 나라, 공의와 정의 등의 의미에 대해서는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들은 적이 없다. 구약의 뒷부분을 이루는 예언서 같은 경우는 거의 설교에 소개되지도 않았다. 목사님들이 잘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일부러 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구약은 오로지 오실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춰졌고 성취될 약속과 예언의 말씀 정도로 치부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일부 목사님들이 구약의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탄생, 공생애, 죽으심, 부활과 연결시키려고 억지스럽게 해석하는 설교도 꽤 많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듣고 배운 성경 해석의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레 구약은 언제나 신약에 비해 열등한 것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굳이 잘 몰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날 때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성경을 스스로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려워도 절박한 심정에 여러 신학자들이 쓴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국민학교 3학년부터 교회를 거의 빠지지 않고 다녔지만,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는 구약의 의미와 하나님 나라, 공의와 정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숙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신앙의 전환점이었다. 자유케 하는 진리의 끝자락을 조금이나마 맛본 기분이었다.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꼈고 성경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드라마로 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재미난 점은 이런 과정에서 구약이 신약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구약은 여전히 어렵지만 신약보다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한분이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귀한 자료가 되었다. 지금도 매일 성경을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으며, 특히 구약에 대한 해석은 여러 신학 책을 참고하면서 조금씩 지속적으로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내가 학창 시절,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닐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목사님들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다. 기존 교회에 대한 실망과 좌절 등을 다 맛보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평생 내 가슴에 남게 될 것 같다.

구약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던 중 ‘구약이 이상해요’라는 책을 접했다. 이미 여러 책을 통해 구약에 등장하는 해석이 어려운 부분들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들을 접했기 때문인지 나에게 이 책은 술술 읽혔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는 정보는 없었다. 그러나 다시 읽어도, 언제 읽어도 질리지 않고 좋은 하나님 말씀을 다시 상기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월간지 ‘빛과 소금’에 2019년 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23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글을 모으고 편집해서 완성된 책이다. 제목만 보면 구약 전체에 대한 난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23장은 모두 토라,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이르는 모세 오경에 등장하는 난제들만을 다룬다. 부제가 제목을 대신하면 더 좋을 듯하다.

혼자서 성경을 비판적인 눈으로 진지하게 읽게 되면 궁금해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성경에는 그야말로 모순되고 상반되는 이야기들도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부분이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읽어나가거나, 알아도 무시하고 넘어가곤 하는데, 이런 부분을 스스로 찾아보고 물어보고 공부해 나가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더욱 견고해지리라 확신한다. 어려운 신학 책을 곧바로 들여다보게 되면 신학 책 특유의 난해한 설명과 분위기에 압도되어 길을 잃기 쉽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대중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깊고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겐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각 장은 모두 10 페이지 이내로 구성되어 있는 데다 글씨도 크고 간격도 넓어서 쉽게 이해하면서 읽어나가기에 적합하다. 23장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은 13장,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고?’와 19장, ‘거룩하라! 어떻게 해야 거룩해지지?’, 이 두 장이었다. 특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은 거룩의 의미를 다루는 레위기 19장에 대한 해석은 읽어도 읽어도 은혜가 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정도의 성경 해석에 대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알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독을 권한다.

#새물결플러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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