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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기다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폴라 구더 저, ‘기다림의 의미’를 읽고

하나님 나라는 시간적인 의미에서 이중성을 지닌다.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소위 ‘이미 (already)’와 ‘아직 (yet)’ 사이에 존재하는 나라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긴장과 갈등이 공존한다. 이미 얻은 변화와 평안만이 아닌, 아직 얻지 못한 변화와 평안도 존재한다. 바울이 권면했듯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간표에 해당한다. 그 시간표는 곧 현재, 오늘, ‘지금, 여기’이다. 구원을 이미 다 얻은 것처럼, 그래서 마치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것처럼 수동적으로 넋 놓고 앉아 막연한 천국을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역동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하나님 나라를 받치는 거대한 두 축인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려고 애쓰면서 오늘을 그날처럼 살아내는 자세야말로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낸다는 것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이 경계에 놓인 시간표는 곧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선진들과 마찬가지로 기다림의 시간표에 놓여 있다.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 이 기이한 나라에 속한 백성의 주된 임무는 어쩌면 ‘역동적인 기다림’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왔기 때문에 정착하여 영원히 거류민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갖춘 채 나그네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깨어 있어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개인과 사회, 나와 타자와 세상을 함께 돌보는 삶,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기다림의 시간은 단순한 대기 시간이 아니다. 그 자체로써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 ‘기다림의 의미’와 원제 ‘The Meaning is in the Waiting’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영국 신학자인 저자 폴라 구더는 이 책에서 그 기다림의 의미를 유연하고 대중적이며 친숙한 필체로 쉽게 풀어준다. 이 책은 어려운 신학 책이 아니다. 묵상집이다. 특별히 대림절 기간에 맞추어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기다림의 역동적인 의미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묵상이 담겨 있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4주에 걸쳐 진행되는 대림절에 맞춰진 것이다. 첫째 주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기다림, 둘째 주는 선지자들의 기다림, 셋째 주는 세례 요한의 기다림, 그리고 마지막 넷째 주는 마리아의 기다림. 이 네 가지 서로 다른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선 서로 같은) 기다림의 의미를 저자는 성서학 전공자답게 해당 성경 본문을 인용하고 해석하면서 친절하게 풀어준다. 각 장의 주요 인물은 모두 과거의 사람들이지만, 저자는 그 기다림의 동일한 의미를 오늘날로 불러와 우리에게 적용시켜주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맥락에서 기다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여기 미국에는 11월 말 Thanksgiving 주가 지나면 곧바로 크리스마스트리가 판매되기 시작하고, 길거리에 심긴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전구들로 이뤄진 옷을 입으며, 라디오를 틀면 캐럴이 들리기 시작한다. “It’s the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이라거나 성탄을 기뻐하자는 가사의 노래들이 여기저기서 다른 목소리와 다른 버전으로 울려 퍼진다. 마치 오늘이 벌써 크리스마스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12월 25일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할 것처럼 들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과연 미국인들이 누구보다 진지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기독교 국가로 시작된 미국이라지만, 과연 그 정신이 이런 분위기 속에 아직 살아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은 더 이상 예수의 탄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저 상품화된 휴일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분위기가 충만한 가운데 나는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기다림은 머리가 아닌 몸의 일이라는,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단순히 성탄절의 중요성을 관념적으로 깨닫는다고 해서 대림절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되새기게 된다.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모두 성탄절인 것처럼 호들갑 떠는 행위가 결코 기다리는 사람의 진정성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인지하게 된다. 진정한 기다림은 요란함과 화려함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고요함과 담백함 속에 있다. 미래를 현재로 앞당겨 그날의 기쁨을 미리 맛보려는 동기와 행위는 결코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의 바른 마음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 중심에는 현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진정성 있게 기다린다는 것은 현재를 버리고 미래로 대체하는 게 아니라, 현재가 가지는 의미를 과거의 맥락으로부터 견지하는 동시에 현재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며, ‘지금, 여기’에서 해야만 하는 일을 오늘도 성실하고 묵묵하게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내는 행위만이 현재에 살아있는 자가 될 수 있다. 특별한 하루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 임하는 희미한 구원의 빛을 알아채고 감사하며 늘 깨어 있는 삶. 바로 역동적인 기다림의 삶,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일 것이다.

#학영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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