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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나를 넘어서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 26. 07:30

나를 넘어서기

나는 내 손에 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것들이 지닌 효율성, 유용성,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사람들을 압도시킬 수 있을지를 혼자서 상상하고 있노라면 마치 미친놈이라도 된 것처럼 혼자서 실없이 웃기도 하며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모두 허영이었다. 허영을 생각하면 곧 터질 풍선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고작 허영과 허세를 위해 탕진한 시간과 만남들이 구름처럼 허다하게 내 인생을 수놓고 있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는 성공지향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항로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은 교묘하게 포장되어 이 시대 성공자의 지혜로 간주되기도 한다. 실제로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지만 현실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는 것들이 이 세상엔 너무나도 많다. 이런 괴리를 알게 되었다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슬픈 일이다. 어른이 되면 좀 더 지혜로워질 줄 알았는데, 돈의 노예로 스스로를 굴복시키며 합리화 따위나 하는 존재로 수렴하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지혜의 정의도 그에 따라 바뀌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참 지혜에 현실성이라는 때 묻은 논리를 조금씩 갖다 부치다 보니 어느새 그 지혜는 빛을 잃었고, 한낱 이상이 되었으며, 그걸 여전히 쫓는 자는 어리석은 자로 치부되는 세상에 이르렀다. 언젠가부터 어른이 되어 살아남고 싶은 자는 선택해야 한다. 적당한 불의를 행하며 살 것인지, 불의나 정의 따윈 신경 쓰지 말고 되는 대로 살 것인지. 가진 자의 힘에 따라 불의가 정의로 둔갑할 수 도 있는 세상이다. 정의는 그저 이기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기는 자의 논리가 정의인 것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부인할 수도 없는 물적인 증거 앞에서는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과 지식, 지혜는 그저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전락하고 만다. 정도는 사람과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적당히 합리화를 하고 눈을 감고 살아야 하는 세상. 어른이 된다는 건 강해지는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안다. 그건 슬픈 일이다. 

나는 아직도 종종 터지지만 않으면 부풀대로 부푼 풍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터지기 전에 어떤 계기를 통해 위험을 감지하고 그 길을 떠났음에도, 그 탈출을 은혜 혹은 구원이라 믿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풍선에 대한 환상에 젖곤 한다. 터지지만 않으면 되지 않겠냐고, 터지기 직전까지만 가면 되지 않겠냐고, 그게 진짜 지혜이자 성공이지 않겠냐고 스스로에게 도발을 하곤 한다. 동시에, 지금도 풍선이 되어 스스로를 계속 부풀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풍선은 반드시 터질 거라고, 그래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고 혹은 터져야만 한다고 바라게 된다. 그야말로 고약한 심보다. 이건 도저히 은혜와 구원을 경험한 자의 낮은 마음이 아닐 것이다.


의미는 내 손에 쥔 것들에만 있는 게 아니다. 타자의 손에 쥔 것들,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 혹은 아무도 가지지 못한 것들에도 의미는 존재한다. 의미 중독자인 인간으로서 내 손에 쥔 것들에서만이라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살 이유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나는 이 한 걸음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나를 넘어서는 한 걸음. 허영과 허세는 이기적이거나 악한 사람들의 길이 아니라 깨어 있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Default로 겪게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작은 한 걸음. 함께 하는 동지들은 적을지도 모른다. 배신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고수하고 싶다. 점점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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