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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나쓰메 소세키 저, ‘마음’을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8. 16. 08:40

마음

 

나쓰메 소세키 저, ‘마음’을 읽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품은 자를 확신으로 이끌었다가도 이내 무지의 바다에 빠뜨려 당황스럽게 하며, 알아챈 자 역시 동일한 미궁에 빠뜨리고 마는 것.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이며 정체를 알 수 없어 그 존재 자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 그러나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제목이기도 한 바로 그것. 마음. 

읽는 내내 복잡한 마음이었다. 작품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작품을 읽는 내 마음만 복잡했을 뿐이다. 마치 확신과 무지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심정이었다. 나는 또다시 내 안에서 깊은 모순을 느꼈고, 죄책감을 느꼈으며, 속죄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낯설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뇌했고 아파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시기에 손에 쥐게 된 책이 ‘마음’이라니. 어쨌거나 나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뒤늦게 또 하나의 거장의 작품 세계로 입문하게 된 것이다.

정의하기가 까다롭지만 (불가능할지도), ‘마음’은 ‘심리’ 혹은 ‘인간의 본성’과도 중첩되며 인간의 특징을 설명하는 본질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생각과 마음’의 이분법을 들며 생각은 머리에서 마음은 가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생각이 머리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동의가 되지만, 마음이 가슴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동의가 되지 않는다. 생각과 마음이 과연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면에서도 나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 질문은 관념적이라거나 추상적이라서, 마치 영혼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부정신학적인 방법을 차용할 수 있다면,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은 적어도 가슴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고. 

인간의 본성을 다룬 여러 천재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지금까지 적지 않게 읽어왔지만, 단 한 번도 지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는 작가마다 다른 각도, 시선, 문체로 다양한 상황, 사건들을 다루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마도 인간의 마음이 가지는 신비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묘연함이 가지는 매력이랄까. 안다고 여겼으나 알지 못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 같은 힘이랄까. 글의 영원한 소재와 주제가 될 마음. 작가 정보를 간략하게 훑어보니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의 마음 (혹은 심리 혹은 본성)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대표작이라 불리는 이 책에서도 그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내면 묘사에 주력한다. 서사보다는 묘사에 치중한 작품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나고 마음에 남았다. 아마도 한동안은 그러리라 생각된다. 그 때문일까.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작품들도 들여다보고 싶어 오늘 나는 여러 작품들을 찾아 보관함에 넣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두 남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1, 2부의 화자인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아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3부의 화자인 ‘나’를 만나게 된다. 첫 문장을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로 시작하는 것만 봐도 이 작품은 1, 2부의 화자가 3부의 화자를 만나고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 형태를 띠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게다가 3부는 분량이 전체의 절반 정도 되는 데다 편지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 나쓰메 소세키 시선의 무게중심은 선생님이라 불린 남자의 마음 위에 머문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1, 2부의 화자는 3부의 화자를 전면으로 드러나게 하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읽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는 공교롭게도 죽음이었다. 그것도 타살이 아닌 자살. 이 작품에서도 죽음 (자살)의 냄새는 진하게 배어있다. 선생님이라 불렸던 3부의 화자도, 또 그를 자살하게 만든 동기를 제공했던 과거의 친구 K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1, 2부의 화자가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아 나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라 여겼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번엔 또 누가 자살을 할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는 선생님의 마음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한다거나 파헤치지 않는다.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가능한 그대로 묘사하려 애썼던 것 같다. 시대가 지나도 인간의 마음은 마치 그대로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레 시공간이 엄연히 다른 곳에 위치했던, 그것도 가상의 인물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장수 비결일 것이다. 어쩌면 스토리텔링 혹은 내러티브의 무게중심은 거대하거나 기발한 서사에 있지 않고 그 서사 가운데 서 있는 인간의 내면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의 힘이다.

선생님의 마음을 한 단어로 집약시킬 수는 없겠지만, 부채감, 죄책감, 수치 등으로 해석한다면 모든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그가 이 작품의 3부를 이루는 생애 마지막 장문의 편지를 쓰고 자살을 감행했던 이유 역시 이런 단어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선생님은 막역했던 친구 K의 자살을 본인이 저지른 타살로 여기진 않았을까. K가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하숙집 주인의 딸을 K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 발 앞서 결혼을 서둘렀던 선생님. 축복된 결혼식에서도 K의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아내를 바라볼 때마다 K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아내에게 죽기 전까지 진실을 말하지도 못한 채 세상과 동떨어진 섬이 되어 평생을 살아갔던 선생님. 3부를 이루는 마지막 편지 안엔 모든 진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1, 2부의 화자는 이 세상에서 선생님의 진실을 알게 된 유일한 남자가 된 것이었다. 

마지막 편지는 선생님의 독백이기에, 그리고 인생 전체가 담긴 막중한 무게 때문이라도, 독자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K의 자살은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내가 발췌한 다음의 문장들만 읽어도 선생님의 마음을 살짝이라도 훑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독점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네. 내 자존심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네.”
“나는 책략으로는 이겼지만 인간으로서는 패배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네.”
“내가 무엇보다 큰 충격을 받은 문구는, 편지 끝에 남은 먹물로 갈겨쓴 듯, 더 빨리 죽었어야 했는데 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마지막 한 줄이었네.”
“나는 작은아버지에게 기만당했을 때 타인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네.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은 완벽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 그런 믿음이 K의 일로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 자신도 작은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을 때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네. 타인에게 등을 돌렸던 나는 곧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었고, 나 자신을 가둔 채 점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변하고 말았네.”
“그럴 때마다 나는 웃기만 했지. 그러나 속으로는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척 슬펐네. 아니지, 이해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만들 용기가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고 해야 옳을 것이네. 그래서 나는 더욱 슬펐지. 나는 외로웠네. 나는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에 잠기곤 했네.”
“현실과 이상의 충돌, 그런 표현만으로는 뭔가 부족하지만, K는 나처럼 외롭고 공허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네. 나 또한 K가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걸어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거든. 나뭇잎을 소리 없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욕망, 배신, 불신, 죄책감, 부채감, 고독, 그리고 자살. 이렇게 흘러가는 플롯에서 과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존재할까. 그럴 수 없기에 이런 문학 작품은 시대와 문화를 달리하면서도 끊임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읽히는 게 아닐까. 본질은 마음이다. 진정성 어린 마음. 모든 서사를 뛰어넘어 독자의 마음에 가 닿는 그 무엇. 밝음보단 어두움이 지배하는 작품이지만, 모든 인간의 마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 가식적인 밝음을 만들어내어 보이는 것보단 어두움을 직시하게 만드는 방식이 주는 이 의외의 효과. 아,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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