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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시로 번역하기

크리스티앙 보뱅 저, ‘환희의 인간’을 읽고

모든 단어와 문장이 반짝거리는 글. 크리스티앙 보뱅에겐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표현도 식상하다. 소설가가 아닌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서 보뱅은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인다. 왜 여태까지 그를 몰랐을까. 이제서라도 그를 알고 그의 글을 읽게 된 걸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할 때마다 나는 과연 내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 하고 묻게 된다. 괜한 죄책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모르는 작가들의 글을 찾아 나서는 글 사냥꾼이 되고 싶은가 보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며 문학을 가까이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문학은 내 삶의 여백을 채운다.

시인의 입김이 녹아있는 에세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러나 결코 과하지 않은 단어의 선별은 글의 정확성은 물론 글의 아름다움까지 담아낸다. 그동안 꽤 많은 에세이를 읽어왔지만 대부분의 에세이는 감상적인 측면만이 강조된 채 정확성이 결여되어 아름다움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꽤 많은 경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내 마음에 남는 건 동정심이었다. 그런 글은 에세이라기보다는 호소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감정 팔이에 지나지 않는, 한두 페이지로 충분하지만 열 페이지로 늘여 쓴 글. 상투적인 비유와 자기 연민의 목소리가 진하게 묻어나 글 속에 타자나 삶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비추는 에세이는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진 독자에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보뱅의 글은 다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랄까. 그의 글은 독백으로 끝나고 마는, 그래서 저자의 목소리가 닿는 데까지만 영향력을 미치는 글에 속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오히려 소리 없이 멀리 퍼져나간다. 한낮에 외치는 고함소리가 아니라 어두운 밤 잔잔한 빛의 목소리로 독자에게 스며든다. 그렇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 어둠을 마침내 극복한 빛의 은은한 목소리. 보뱅의 글이 삶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가 노래하는 삶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기쁨이 아닌, 죽음을 맛보고 그것을 극복한 눈이 깊은 지혜자의 순수한 기쁨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죽음 뒤에 맛보는 삶, 전쟁터에서 돌아온 자가 맞이하는 평범한 일상. 그렇다. 보뱅의 글은 부활을 담지한다. 삶을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된 사람. 하필 그 사람이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보뱅인 것이다!

프랑스 저널 ‘렉스프레스’에 담긴, 이 작품에 대한 짧은 서평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본다. 다음과 같다.

| 크리스티앙 보뱅은 어떤 꼬리표로도 가둘 수 없는 작가이다.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첫머리부터 이런 문장을 제시하는 사람의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보뱅식 마법이 있다. 사소한 디테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선택된 단어, 어둠과 죽음 속에서도 이끌어낸 미소와 웃음으로 이루어지는 마법이.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의 작품은 그가 ‘멜랑콜리’라고 이름 붙인 천사와의 투쟁이다. 글쓰기 덕분에, 그는 그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우리 독자들은 그를 믿을 수 있다. |

일상을 시로 번역해내는 보뱅. 무광, 무채색의 평범한 일상에 빛과 색을 입히는, 환희의 인간, 보뱅. 그러나 그가 입히는 빛과 색은 어둠과 죽음을 통과한 깊은 물에서 길어낸 질료로 이루어졌다. 읽어 보라. 그리고 느껴 보라. 그 환희의 순간을. 그 깊은 기쁨과 깊은 순수함을. 그리고 그 가운데 숨어있는 지혜의 조각들을. 혹시 아는가. 당신의 일상이 함께 회복될 수 있을지도. 

#1984BOOKS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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