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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해 준 작품

마쓰이에 마사시 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평생 잊히지 않을 작품.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 곁에 두고 자주 읽으며 필사하고 또 외우고 싶은 책. 그 어디로 이사를 가더라도, 혹은 무인도에 가게 되더라도 가장 먼저 챙길 열 편의 작품 리스트에 당당히 오른 책. 아, 이런 축복이 또 나에게 주어지다니!

기발한 발상도, 놀랄 만한 사건도, 특별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작품. 그러나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고 내 눈과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아버린 글의 전개는 작품을 읽는 내내, 그것도 장장 400 페이지에 걸쳐 지속되었다. 나에게 이 작품은 어퍼컷처럼 체중을 실은 큰 한 방은 없지만, 무수히 많고 작은 잽들로 독자를 압도시키고, 나아가 중독까지 시켜버리는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말하자면 문체다. 탄탄한 문장력과 필력은 아름답고 고유한 문체로 인해 더욱 빛이 났다. 책을 덮고 내 마음은 보슬비에 흠뻑 젖은 옷처럼 마쓰이에 마사시의 문장들로 흥건하다. 그의 문체를 몽땅 흡수해버리고 싶은 강한 욕망이 부러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함께 지금도 내 안에서 들끓는다. 나는 문학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이다.

이 작품이 지금으로부터 고작 10년 전인 2012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나를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고전 문학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현대 소설이라니! 내가 지향하는 소설의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하나의 실례를 본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전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마음 속으로 그렇게나 바라던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공간에서 턱 하고 마주치게 되었을 때의 마음이랄까. 그 당황스럽고 황당한 기분, 그러나 한 편으론 놀랍고도 감당하지 못할 것처럼 복에 겨운 이 감정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뻔한 내용을 뻔하지 않게 풀어낼 줄 아는 것도 능력이지만, 뻔한 내용을 뻔하게 풀어내면서도 독자들이 빨려들어가며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은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 마음을 충분히 읽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것을 다 표현하지 않고 충분히 절제한 뒤,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 그리고 화자의 독백을 이용하면서도 독자의 개입을 자유로이 허락하여 이야기를 함께 느끼고 즐기고 전개해나가는 방식. 이런 방식이야말로 이런 작품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요 팁이지 않을까 싶다. 진심으로 모방하고 싶고 내 것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문장들이 실로 넘쳐나는 작품이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모든 작품을 보관함에 담았다. 연구할 가치가 차고도 넘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 작품이 가지는 위상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책을 읽고 한국 번역본의 제목이 참 잘 지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니. 내가 작가로서 읽은 감상이 아니라 독자로서 읽은 감상은 정확히 그것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 한 구석에 여름 별장에서 현대 도서관 건축을 위해 보내던 주인공을 비롯한 무라이 슌스케, 또한 그의 사무소 가족들의 일상이 아련하게 남는다. 그리고 제목처럼 이 아련함은 아무래도 나에게도 오래오래 지속될 듯하다.

#비채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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