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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과 감사
켄트 하루프 저, ‘밤에 우리 영혼은’을 읽고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지도 이미 오래된 두 남녀의 교감. 너무 늦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용기 내어 남의 눈치 보지 않는 행복을 찾아나선 것일까. 어느날, 배우자를 잃은 지 한참 지난 칠십 대의 애디 무어는 같은 상황에 있는 이웃 루이스 워터스를 찾아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루이스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섹스 이야기인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애디는 그런 루이스를 눈치채고 말한다. “섹스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잖아도 궁금했어요.” “아니,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잃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에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거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에디의 제안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루이스도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낸 후 혼자 밤을 지새우는 경험을, 그 외로운 나날들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둘은 금지된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칠십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을 행동에 옮긴다. 루이스는 가끔, 혹은 매일 밤마다 애디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애디와 루이스의 잦은 동침은 금세 동네 소문거리가 되었다. 내막을 알지 못한 채 표면적으로 드러난 둘 사이의 행동만을 보고 섣불리 내린 판단은 좋을 리가 없었다. 꼴사납다, 남사스럽다, 추태다, 등의 반응을 일으켰다. 급기야 루이스의 딸 홀리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아버지를 나무랐고, 애디의 아들 진 역시 가정 문제를 빌미로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가 어머니를 비난하고 면책했다. 유일하게 그들을 정죄하지 않는 존재는 손주 제이미와 애완견 보니였다. 주위의 좋지 않은 평판에도 불구하고 애디와 루이스는 이제는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며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받아주고 만족한다면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맘먹었다. 이웃들이 그들을 좋지 않게 보는 이유는 늙은 남녀가 배우자가 죽었다고 해서 바람난 것처럼 밤마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가족이나 이웃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보편적인 선입견을 개별적인 상황에 무분별하게 적용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암묵적인 폭력이었던 것이다.
소설의 결말에선 끝내 둘의 관계는 예전처럼 유지되지는 못하게 되지만, 애디와 루이스에게 그 짧았던 기간은 서로에게 많은 치유와 위로를 안겨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밤에 이루어진 영혼의 교감은 나이와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 본성에 다다르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 낮과 달리 밤이 가져다주는 고요는 적막과 외로움으로 이어지기 쉽고, 종종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벼랑 끝으로 개인을 몰아가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긴긴밤을 그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 축복일 것이다. 나도 이젠 그런 사람이 매일 밤 곁에 있다는 사실, 또 내가 그 사람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한다.
#뮤진트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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