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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주위를 둘러보는 삶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9. 13. 11:05

주위를 둘러보는 삶

 

긴 연휴의 마지막 날, 온다던 비는 또 연기되었다. 덕분에 온종일 흐린 날씨가 지속되었지만, 우리에겐 기회였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엔 구름 한 점 없는 날보단 살짝 흐린 날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우린 일부러 점심식사를 먼 곳에서 하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식당에 들어가면 딱 좋을 거리를 택했다. 

 

우린 강변을 달리며 자전거 위에서 작은 자유를 마음껏 맛보았다. 혼자 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가족과 함께 땀을 흘리며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축복인 것 같다. 앞으로도 틈만 나면 타슈를 동원해 대전 이곳저곳을 다녀볼 생각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갑천을 따라가면 카이스트, 충남대가 이어진다. 우린 충남대를 둘러보았다. 오르막길을 오를 땐 허벅지가 터질 듯한 힘겨움을 느꼈지만, 그만큼 내리막길에서 느낄 수 있는 바람은 청량음료와 맞먹는 시원함을 가져다주었다. 엉덩이엔 땀이 차기도 해서 잠시 자전거를 세워놓고 쉴 때면, 서로의 땀에 젖은 엉덩이가 원숭이 엉덩이 같다며 서로를 약 올리며 깔깔대기도 했다. 모든 게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 편히 웃고 즐기는 시간. 남은 날들 동안 어떻게든 사수해야 할 소중함일 것이다.

 

충북대 출신인 아내는 충남대를 둘러보며 대학시절이 떠올랐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그런 기억이 없다. 포항공대에서 보낸 대학시절은 종합대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대학시절과는 분명 다른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에겐 종합대학의 기억이 전무하다. 어쩌면 나의 대학시절이나 대학원 시절은 연구소 분위기의 확장판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종합대학에 다녔던 아내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포항공대가 아닌 종합대학에 다녔다면 어땠을까, 과학이 아닌 문학을 전공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과연 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정답 없고 부질없는 생각에도 잠시 잠겨보았다.

 

‘바르미 샤브 칼국수’라는 식당이 있다. 샤브샤브를 특히나 좋아하는 나는 미국 가기 전부터도 여러 샤브샤브 식당들을 돌아다녔는데, 몇 주전 여기만큼 가성비 좋은 곳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기본 소고기 샤브샤브에 뷔페 식으로 여러 음식들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데, 그것들의 퀄리티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괜찮기 때문이었다. 이젠 다른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갈 때마다 나는 바르미 일 인분의 가격을 잣대 삼아 가성비를 따지게 되었다. 뭘 먹을지 별 생각이 없고, 집에서 요리하기 싫은 날이면 바르미를 찾으면 된다는 생각까지 이젠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가격이 더 오르지 않으면 좋겠다.

 

자전거 덕분에 내가 사는 곳 주위를 둘러볼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다. 집이나 직장 같은 장소에만 제한되어 사는 삶은 아무래도 멋대가리가 없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는 삶. 곧 소중한 행복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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