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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David Foster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9. 10. 09:41

David Foster

부모님 댁을 찾을 때마다 나는 나의 과거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흔적들을 만난다. 미국 갈 때 부모님 댁으로 넘겼던 짐들 중에는 내가 아끼던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러니까 11년 이상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소중한 추억들을 나는 오늘 다시 만날 수 있었다.

David Foster 에게 심취했던 건 대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때는 1996년, 포항 오지에 있던 기숙사에서 나는 현재 내가 속한 그룹 리더이기도 한 구본경 박사를 만나 한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닭장이라 놀림 받던 19동 205호. 맥시칸 치킨을 한 마리 시키면 항상 한 마리 반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마법의 장소.

놀랍게도 나의 방돌이는 그 당시 갖기 힘든, 특히 기숙사 방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시디와 카세트 테이프를 둘 다 작동시킬 수 있는 미니 전축을 가지고 있었다.

휴대폰이 아닌 삐삐가 소통의 수단이었던 시절, 우린 그 전축 덕분에 많은 음악을 고퀄로 들을 수 있었고 (나름 자부심도 느꼈다), 삐삐의 시그널 송을 녹음하기도 하고, 곡을 엄선하여 카세트 테이프를 제작한 뒤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당시였을 것이다. 내가 David Foster에게 빠지기 시작했던 건.

우린 부모님께 받은 용돈이나 과외로 번 돈으로 시디를 구입했고, 서로가 산 시디를 함께 들으며 포항 시골에 고립되었다는 기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늘 밀려있는 숙제의 스트레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지금은 하나의 이미지 정도로 기억된 추억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 미니 전축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오지에 모여 스파르타 식으로 훈련받던 포항공대 신입생 시절의 감성을 책임지던 고마운 친구였던 것 같다.

그때 구입했던 시디 중 일부를 오늘 영접했다. 이것들을 사 모으느라 이곳저곳 레코드 가게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모른다. 지금은 먼지가 찌들기도 하고 플라스틱 커버가 곳곳에 깨져있기도 해서 볼품 없어 보이는 시디 다섯 장이지만, 나에게 이것들은 소중한 추억의 일부인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상의 조각도 나름대로의 무게를 가지는 것 같다. 그 무게가 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채색되어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마흔 여섯이 된 나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온 나의 1996년, 그 풋풋하던 시절. 지나온 26년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문득 나의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나의 허물도 실수도 모두 녹아있는 나의 과거를 두팔 벌려 감싸 안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짧았던 과거로의 방문을 즐겁게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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