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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글 쓰는 즐거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9. 30. 15:15

글 쓰는 즐거움


글쓰기는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예사롭지도 단조롭지도 않다. 오히려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작정 쓴다고 해서 생기지도 않을뿐더러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이런 면에서 글쓰기의 즐거움은 쟁취하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얻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능동적인 행위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몸부림 따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 행위의 무게중심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있다. 나 자신으로부터의 인정. 그렇다. 글쓰기의 즐거움은 스스로 끊임없이 갱신하는 과정 중에 비로소 얻어지곤 하는 인고의 열매다. 

참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열매를 한입 가득 깨물면 단맛만 나지 않는다. 쓴맛은 물론이며 신맛, 짠맛, 그리고 매운맛까지 골고루 느낄 수 있다. 이런 맛을 본 이후 칭찬을 들으면 단순히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가지는 입체적인 맛을 봤기 때문이다. 아, 그 복잡한 심정이여! 하지만 이게 바로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실체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의외로 자신의 한계에 자주 봉착하고 그럴 때마다 좌절을 맛보게 된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은 처절한 마음이 들고,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군, 하는 자조 섞인 메아리가 머릿속에서 시시각각 울려댄다. 때론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펜을 꺾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내가 뭐라고, 하면서 헛웃음을 짓고선 조용한 좌절 모드로 복귀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동안 써 왔던 글을 절대 절대 꺼내어 읽지 말 것! 그랬다간 더 가관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끼기도 하고, 모조리 짝퉁 같고, 모조리 짜깁기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며,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나 억지스러운 부분들, 웃기지도 않은 어설픈 부분들이 “나 여기 있어~” 하며 깃발을 들고 있는 것처럼 글 속에서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놈들이 왜 이제야 정체를 드러낸단 말인가! 

물론 이런 충고를 한다고 해서 이 과정을 영원히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나, 어차피 들여다보게 될 거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북받친 감정을 충분히 가라앉힌 다음에 천천히 보라고 나는 글쓰기 동지로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조언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글쓰기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치열해야 한다.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해서는 남들이 하는 만큼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는 상황에서, 빈 시간에, 혹은 시간을 만들어서 글을 써야 한다. 글 쓰는 시간을 사수해야 한다. 글쓰기가 루틴이 될 때까지, 글쓰기가 일상으로 잦아들 때까지 말이다. 

세 번째 책이 될 글을 쓰면서 나는 내 글쓰기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다시 인지하게 됐다. 과거에 썼던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내 글이 가진 어떤 틀을 보게 된 것 같다. 몇 개 되지 않는 기능을 장착한 오래된 기계를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에게 없는 기능을 장착할 필요도 느꼈고, 그 기능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책 다시 구입하기 프로젝트는 바로 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재독이다. 읽지 않은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노력과 더불어 읽고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다시 읽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필사도 좋겠지만, 재독과 연구야말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글쓰기 여정 중 주안점을 두고 진행해야 할 과업이 아닌가 싶다. 좀 더 정면으로 승부하기 위해, 좀 더 깊고 풍성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나아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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