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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준비: 재독 프로젝트와 작가 노트 만들기

어젯밤 다시 원고를 꺼내어 천천히 읽었다. 그제와 달리 썩 괜찮아 보였다. 감동과 교훈, 그리고 몇몇 빛나는 문장들까지 눈에 쏙쏙 들어왔다. 과장하자면, 하루 만에 최하품에서 최상품으로 바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웃음이 났다. 허탈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글은 요물이란 생각이다. 동일한 텍스트라 하더라도 읽는 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심지어 본인이 쓴 글인데도 말이다. 

글을 쓰고 만족감에 취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해도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는 후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나의 글은 대부분 불만족에서 마무리된다. 만족할 때까지 쓰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 시점이 언제 올 지, 아니 오기나 할는지, 나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마냥 더 붙들고 씨름한다고 해서 더 훌륭한 글이 나오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100이 아니라 80-90 정도 됐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글을 마무리한다. 10-20은 나에게 있어 어쩌면 영원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일지도 모르겠다. 부인할 수 없는 나의 부족함이다. 재독 프로젝트를 기획한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이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메우기 위해서다. 

나는 전업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글을 쓸 수도 없고, 글 쓰는 시간을 중심으로 하루를 구성할 수도 없다. 많아야 하루에 평균 한두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여러 방해거리가 많은 환경에서 말이다. 글쓰기를 위해 밥벌이인 과학자라는 직업을 버릴 수도 없고, 한 여자의 남편 역할을 포기할 수도 없으며, 한 아이의 아빠 역할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또한, 나 정도면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글을 꾸준히 많이 쓰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내 글이 부족한 원인을 연습 부족에서 찾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꾸준히 많이 써야 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사람의 경우는 조금 다른 연습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글쓰기는 연습이 생명이지만, 연습만으로는 발전을 거듭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 훈련이 된 사람의 경우는 제2의 전환점을 맞이하여 성충으로 변태를 하기 위한 다른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탈바꿈하는 과정과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험상 무작정 동일한 연습을 한다고 해서 실력이 예전처럼 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랬지만, 이쯤 되면 어지간한 글쓰기 훈련생들은 정체기에 접어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글쓰기 연습을 그만두거나 게을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시기를 다르게 보고 싶다. 정체기가 아니라 제2의 전환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활발하게 움직이던 애벌레가 어느 날 번데기가 되어 모든 게 멈춰버린 듯한 현재가 아니라, 곧 나비로 변태할 번데기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재독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도출된 나 혼자만의 탈출방법이다. 그동안 많은 글을 읽어왔다. 그러나 그 글들이 생각보다 내 핏속으로, 내 골수 안으로 스며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요즈음 확연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감동만 하고 감상문을 남기며 찬사만 보냈지, 정작 내 것으로 소화하지는 못했던 탓이다. 그렇다. 나는 정체기를 제2의 전환점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유일한 통로는 수많은 작품들을 찬찬히 씹어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수백 권이 넘는 작품들을 읽으며 내가 특별히 끌렸던 작품들을 다시 찬찬히 읽으면서 (이를 ‘연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0여 권 재독할 책들을 거의 다 모았다) 나는 나만의 작가 노트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밑줄 그었던 문장들,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라 잊기 전에 급하게 써둔 메모들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볼 생각이다. 인물 묘사는 어떻게 하는지, 상황은 어떻게 전개해 나가는지,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시켜야 하는지 등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언젠간 나올 나만의 소설을 위해 조금씩 준비를 해 나가야겠다. 아, 벌써부터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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