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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글
잔잔한 소설이나 시집을 들 때마다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읽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 안이 너무나도 시끄러운 탓이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들거나 바람을 쐬러 밖을 나간다. 웅숭깊은 무언가를 진지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에 여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익살스럽거나 가벼운 이야기들이 즐비한 읽기는 마음의 준비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읽어대는, 안 읽어도 무방한 것들은 내 안의 여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끔, 아주 가끔 교훈을 주는 이야기도 간간이 섞여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런 글들은 내겐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
가벼운 글이 무거운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벼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무게가 있는 글들. 너무나도 쉽게 써졌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작가의 노고가 들어간 글들. 오히려 이런 글들이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하곤 했다. 작가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에 가 닿는 것이다.
불필요한 무게를 잡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글에 마음을 담자는 말이다. 이를 진정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함부로 만나도 되는 글이 아닌, 조금이라도 준비를 하고 만나고 싶은 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글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작가의 마음이 담긴 글, 그래서 독자가 마음을 준비하고 싶은 글. 곧 살아있는 글. 나는 과연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묻게 된다.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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