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읽기와 쓰기

무인도에 들고 갈 작품 12편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9. 13. 23:32

무인도에 들고 갈 작품 12편

약 7년에 걸쳐 지금까지 300권이 넘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중 꼭 소장하고 싶은 12편을 ‘무인도에 들고 갈 작품’이라는 이유로 재미 삼아 골라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문학을 읽어나갈 것이기에 이 리스트는 계속 수정될 것입니다. 즉, 이 리스트는 2022년 9월 현재에 작성된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재미 삼아 훑어보시면서 참고도 하시면 좋겠습니다.

1.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마음 같아선 5대 장편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포함)을 모두 들고 가고 싶지만, 물리적인 무게와 부피를 고려하여, 도스토옙스키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만 대표로 고른다. 인간의 본성을 날 것 그대로 맛볼 수 있으며, 철학, 신학, 심리학 등의 타 학문이 문학이라는 영역 안에 얼마나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작품 안에 인생의 모든 게 다 들어있다고 말한 누군가의 말에 충분히 공감을 표한다.

2.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 아직 ‘전쟁과 평화’를 읽지 않아서 선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선 톨스토이 작품 중에서는 이 작품이 단연 선두다. 이 작품에도 인생의 모든 게 다 들어있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작품 비교를 하며 읽어도 좋고,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비교하며 읽어도 좋겠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두 거장이 쓴 이 두 작품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류의 귀한 자산이자 신의 축복이라 믿는다.

3.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 어릴 적부터 나를 포함한 수많은 한국인의 정서에 영향을 준 헤세의 작품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는 ‘데미안’이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고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고른다. 헤세의 다른 작품들도 다 읽고 나면 나의 선택을 당연하게 여기리라 생각한다. 헤세의 사상이 압축되어 녹아든 엑기스 같은 작품이다. 그의 모든 작품이 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4.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 나 역시 ‘그리스인 조르바’로 카잔차키스를 읽기 시작했지만, 이 작품은 ‘그리스인 조르바’가 전체의 한 부분으로 여겨질 정도의 깊이와 너비를 가진다. 카잔차키스를 읽고 싶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작품을 고를 것이다. 이 책 표지만 봐도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카잔차키스가 느껴진다.

5. 토마스 만, ‘마의 산’
-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고를까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엔 이 작품을 선택한다. 지난겨울 이 작품을 읽으며 나 역시 ‘마의 산’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안을 메우는 인간과 인간의 사상들을 신비로운 기분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6. A. J. 크로닌, ‘성채’
- ‘천국의 열쇠’도 좋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을 고르는 게 맞는 것 같다. 크로닌의 소설을 읽으면 정석을 밟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고 진부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필력, 그러면서도 묵직한 메시지 전달을 놓치지 않는 정확한 글쓰기의 모범을 감상할 수 있다.  

7.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 이 작품을 포함하여 황혼 3부작이라고 불리는 다른 두 작품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중 하나를 골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역시나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쓰인 이 작품을 고른다. 기억과 망각, 우수와 애환, 미련과 합리화 등의 말로 잘 표현하기 힘든 우리들의 잔잔한 감정과 일상을 비스듬히 비친 오후 햇살처럼 아련하게 그려 놓는다.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마법 같은 문체를 감상할 수 있다.

8. 마쓰시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기발한 발상도, 놀랄 만한 사건도, 특별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지만 빼어난 문체와 필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작품. 섬세함과 절제미는 기본이며 단락과 단락을 자연스레 이어가는 기술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묘사의 힘을 잘 구현해내고 있으며, 해박한 글쓰기 재료가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9.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고를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지막까지 아쉬워하며 이 작품을 고른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허영의 가벼움에 깊은 한숨을 쉬게 만들고, 작은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10. 존 윌리엄스, ‘스토너’
- 분열과 고독을 머금은 우리네 평범한 일상을 돌아보게 해 주는 작품. 조용한 절망감과 함께 한 인간의 인생을 관조할 수 있다. 그러다가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11.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 에코의 천재성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탐정소설이라니. 인간이 가지는 모순되고 반지성이며 비합리적인 종교성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이며 신학적인 방대한 지식에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다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된다. 적절한 스릴과 적절한 재미가 더해진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12. 한강, ‘소년이 온다’
- 개인적으로 한국 최고 작가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한강을 꼽는다.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많이 읽지 않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한강 작가의 몇 작품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바다. ‘채식주의자’가 부커상을 거머쥐었지만, 나는 ‘소년이 온다’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1980년 광주를 이해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역사성을 넘어 역사 자체가 되었던 일개 시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인간의 폭력성과 악함 등의 본성도 심도 있게 고찰할 수 있다.  

'읽기와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있는 글  (0) 2022.10.14
글 쓰는 즐거움  (1) 2022.09.30
글 쓰는 시간  (0) 2022.09.09
초고  (0) 2022.09.06
문학을 읽는 한 가지 이유  (0) 2022.07.27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