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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기본기와 개성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1. 20. 13:28

기본기와 개성

기본기도 중요하고 개성도 중요하다. 실없는 질문일지 모르지만,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기본기가 개성보다 더 중요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생각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인가.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가려야 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한 가지씩 없애본다. 이를테면, ‘기본기 없는 개성’과 ‘개성 없는 기본기’를 상상하고 비교해보는 것이다. ‘기본기 없는 개성’이라고 하면, 왠지 설익었다는 인상을 주는 반면, ‘개성 없는 기본기’는 식상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물론 설익은 것과 식상한 것의 차이를 비교하는 일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콘텍스트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기본기와 개성을 고루 갖춘 사람보다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사람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둘을 모두 갖추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는 과정에서도 보통 불균형하게 발전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어느 것에 먼저 무게를 두어야 할지 생각해보는 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기본기가 개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말은 자칫 오해 여지를 남긴다. 개성은 버리고 기본기만 취해도 된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나는 둘 간의 균형을 언제나 지향한다. 내가 기본기에 더 가치를 두는 이유는, 이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리타분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기본기 없는 개성’보다는 ‘개성 없는 기본기’에 점수를 조금 더 주고 싶다. 설익음보다는 식상함을 더 쳐주고 싶다는 말이다. 발전 가능성 때문이다. 예외적인 천재들이 언제나 소수 존재하기 때문에 함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기본기 없이 개성만 특출 난 사람은 보통 자기 잘난 맛에 까불거리다가 제 풀에 지쳐 금세 소멸할 운명에 처해지고, 개성 없이 기본기가 다져진 사람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마침내 본인만의 개성을 싹 틔울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후자에 더 신뢰가 가고 언젠가 펼쳐 보일 그 사람의 개성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 나는 이런 사람으로부터 개성을 끌어내게 도와주는 게 내 임무라고 느끼기도 한다.

스티븐 킹의 글쓰기 책을 읽고 있다. 얼마 전엔 안정효의 책도 읽었다. 둘 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도 그들의 작품에서 가끔 문법을 틀리는 등 기초적인 실수를 하는데, 이런 것들은 의도된 계획일 확률이 99.9 퍼센트다. 그러나 이런 숨겨진 의도도 모른 채 (알아챌 독법을 갖추지 못한 탓이리라) 그것이 왠지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혹은 그런 것쯤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여기고는 함부로 자신의 개성을 뽐내는 허튼 짓에 남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존재하는데, 바로 이런 작자들이 앞서 언급한 ‘기본기 없이 개성만 내세우는 사람’에 속한다. 스티븐 킹은 다른 글쓰기 선배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상급 작가들도 간혹 수사학의 규칙을 무시하곤 했다. 잘 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규칙을 따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페이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안정효도 말한다. “요령으로는 뚝심을 당하지 못한다.” 요컨대 기본기의 중요성에 대한 외침이다. 글쓰기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6년 정도 되는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렇듯 적어도 글쓰기에 있어 개성은 기본기 다음에 위치한다.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은 개성은 잔재주에 불과하고 유효기간이 짧다. 나는 이렇게 말해볼까 한다. “반짝이는 잔재주는 성실한 인내를 이기지 못한다. 글쓰기는 장거리 경주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쓰기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는 어떤가. 내 주종목인 실험생물학에서도 이는 유효하다. 나와 같은 실험생물학자는 시간 관리에 있어서 다른 직업 종사자보다 유동적인 편이다. 우리는 9시 칼출근 5시 칼퇴근을 살아가는 회사원이 아니다. 아니, 될 수 없다. 근로계약서에는 물론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5시 넘어서 일한다고 해서, 혹은 주말에 일한다고 해서 초과수당을 받지 못한다.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은 직종이다. 실험생물학자는 실험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 하루에 8시간 따박따박 일하는 실험생물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밤늦게까지, 누군가는 새벽 일찍부터, 또 누군가는 주말 내내 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실험생물학자는 다른 직업 종사자보다 더 많은 시간 일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일과 시간이라고 지정된 9시부터 5시까지 상대적으로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젯밤 실험하느라 밤을 새는 경우 오전에 조금 늦게 출근해도 무방하다. 오피스에서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땐 밖에 나가 잠시 산책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즉,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실험실 안에 서성일 필요가 굳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유동성은 실험생물학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런 걸 모른 나머지 일과시간을 함부로 사용하여 개인적인 시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곧잘 생겨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유동성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을 남용하는 작자들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이 바닥에서 20년 일하면서 그런 작자들이 잘 되거나 오래 살아남은 경우를 나는 한 번도 못 봤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몇 개 가지고는 성실한 인내를 이기지 못한다. 실험생물학은 장거리 경주와 같기 때문이다.” 제대로 연구도 못하면서 개성이라는 이유로 일과시간을 자기 맘대로 이용할 작정이면 일찌감치 그만 두라고 권하고 싶다. 천재는 드물기 때문이다. 어설픈 잔재주 부리는 건 당신이 천재라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가소로움만 증명할 뿐이다.

글쓰기와 실험생물학은 표면적으로는 거리가 먼 두 영역이다. 그러나 기본기라는 측면에서는 같다. 핵심은 성실한 인내다.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며 정규수업을 충실히 소화하라는 말이다. 당신이 개성이라고 말하는 그 무엇은 당신이 당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고, 당신이 그것을 지키느라 누리는 자유라는 것은 방종과 권리의 남용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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