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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완성과 기본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2. 2. 14:33

완성과 기본

신형철을 통해 나는 산문이 주는 매력에 눈을 떴다. 에세이, 감상문, 서평, 비평과 같은 어느 한 형식에 국한시킬 수 없는 그의 글은 밀도 있게 다가와 머리를 먼저 강타한 뒤 마음과 생각을 강탈한다. 홍수 속에서 비로소 마실 물을 만난 사람처럼 나는 문자의 바닷속에서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며 쉼을 얻는다.

그런데 놀랍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한 사실 하나는 신형철은 글쓰기 책에서 공통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사항 몇 가지를 과감하게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신형철은 ‘것’의 사용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며, 수동태 문장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두 단문으로 나눌 수 있어 보이는 문장도 장문으로 그냥 써 버린다. 그런데 글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것도 글쓰기 규칙을 잘 지키는 다른 작가들의 글보다 더 치명적으로.

좋은 글은 글쓰기 교본에서 알려주는 대로 쓴다고 해서 써지지 않는다. 기술적인 부분은 그저 기술적인 부분일 뿐이고, 기본은 기본일 뿐이다. 좋은 글은 작가의 고유한 사유가 고유한 문체로 발현된 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인 문법이라든지 어법을 잘 익혀둘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신형철의 글은 이런 것들을 함부로 어겼다거나 규칙을 몰라서 써진 글이 아니다. 그것들을 충분히 연습한 이후에나 가능한 자유와 해방을 만끽한 사람의 글이다. 글쓰기에서의 규칙이란 완성을 향한 길이라기보다는 기본을 닦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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