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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나’라는 감옥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11. 20. 14:49

‘나’라는 감옥

간수도 없고 문도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감옥이 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나가려 하지 않는다. 생긴 게 감옥 같지 않아서가 아니다. 감옥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고소하는 사람도 없었다. 유죄 판결을 내린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유형 살이 때문에 온 게 아니다. 한결같이 이 감옥에 갇힌 자들은 모두 자기 발로 찾아왔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은밀한 초대라도 받은 것처럼 한밤중에 하나둘씩 개인 별로 찾아왔다. 

그 감옥의 이름은 ‘나’.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은 ‘나’라는 감옥에 갇힌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갇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고소하지 않았고, 유죄라고 판결하지도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대장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 찾아온 이유는 어쩌면 그 감옥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라거나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중앙통제실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기 안에 갇혔으나 갇힌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닐까? 죄의 최상위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이들의 눈엔 자기만 빼고 모든 이가 죄인으로 보일 것이다. 악의 첨탑에 서 있지만 이들의 눈엔 자기만 빼고 모든 이가 악인으로 보일 것이다. 자기 안에 갇힌 사람들의 비극은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죄악의 선봉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고결한 곳처럼 여겨지고 믿어지게 되어 자신의 의지와 함께 상승효과를 내며 위험한 확신으로 치닫게 되는 데에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 확신은 점점 강해지고, 강해진 확신은 교만을 가뿐하게 넘어 단절과 고립으로, 그리고 파멸로 이끈다. 차라리 그 감옥에 총을 든 간수와 무거운 자물쇠가 채워진 육중한 문이 있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오물과 이와 바퀴벌레와 쥐가 들끓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아는가? 그러면 자기가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고, 마침내 자유와 해방을 소망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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