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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외로움, 고독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낸 내면의 성장

정지우 저, ‘고전에 기대는 시간’을 읽고

페이스북을 통해 정지우 작가를 알게 된 지 5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그의 저서를 손에 들었다. 왜 이렇게 늦어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그가 페이스북 친구 중 가장 성실하게, 그것도 시선을 끌 만한 사진이나 단 몇 문장만으로 끝나는 글이 아닌, 몇 단락으로 이루어진, 완성도가 높은 데다 진정성까지 깃든 글을 포스팅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점에서 답을 찾는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이미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그의 글을 충분히 읽고 있다고 판단했었나 보다. 지난 5년간 그는 책을 여러 권 펴냈다. 그러는 동안 변호사라는 직업도 가졌다. 갓난아기였던 그의 아이도 제법 자랐을 것이다.

그의 저서 중 무엇을 읽어볼까 하다가 바로 이 책 ’고전에 기대는 시간‘을 고르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 역시 서양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고, 언젠가 그의 포스팅에서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라고 썼던 게 불현듯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난 나흘 간 나는 저녁 시간에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동태눈으로 세월아 네월아 숫자가 올라가는 계기판을 쳐다보지 않고 즐겁게 정신을 팔 수 있었다.

이 책은 열두 편의 서양 고전 문학 작품을 읽고 독자로서 그가 남긴 흔적, 그리고 불안하기만 했던, 그래서 외롭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했던, 예비 작가 정지우의 이십 대 시절이 남긴 잔상을 담고 있다. 여기서 잔상이라 함은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이 쓰인 시점은 그가 서른을 넘긴 이후다.

열두 편의 작품 중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은 세 편밖에 없었다. 그가 읽은 양에 비해 내가 읽은 건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을 터인데, 전체의 사 분의 삼이나 읽은 작품이 겹치는 까닭은 아마도 그가 고른 작품이 상대적으로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시 헤세를 읽었고, 그르니에를 읽었으며, 카뮈를 읽었다. 릴케와 지브란에 빠지기도 했고,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를 섭렵하기도 했다. 그가 책들과 보낸 이십대 시절은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이런 멋진 책을 써냄으로써 그는 뭇사람들이 거치는 과정에 ‘의미’라는 옷을 입혀 기념하고 기억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 책의 어느 부분을 펴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정서는 불안, 외로움, 고독이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조그만 그의 자취방. 세상과 단절된 듯한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자기 자신과의 깊은 만남을 가졌던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점은 외톨이로도 충분히 보일 수 있을 만한 상황의 표면이 아닌 그 이면에 초점을 맞춰보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등진 듯한 모습으로 외롭고 불안했지만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는 깊은 심지를 영혼에 견고히 내렸으며 그러면서 내면의 성장, 성숙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책을 통해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읽고 쓰는 삶’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작과 젊은 날의 정신적 방황, 그리고 그런 것들을 꿋꿋이 견디며 주관과 객관에 균형을 이루어나가는 현실적인 모습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을 읽어나가며 그가 얻었던 위로와 평안과 만족을 느낄 수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미 마흔을 훌쩍 넘겨버린 나에겐 서른을 넘기며 이런 내면의 성장을 이뤄낸 정지우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마흔을 넘기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많은 것들을 그는 서른을 넘기면서 모두 체험한 듯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느꼈던 그의 내공은 뿌리가 깊었던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도 살펴볼까 한다.

#을유문화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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