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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정연하고 진솔한 루이스와 그의 글

C. S. 루이스 저, ‘세상의 마지막 밤’을 읽고

이 책은 C. S. 루이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제목인 ‘세상의 마지막 밤’은 그중 하나이며, 이 책에서는 맨 마지막으로 소개된다. 일곱 편의 에세이는 각각 다른 지면에 독립적으로 실렸던 글이며 독립적인 주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가장 먼저 써진 에세이가 1952년이고, 가장 나중이 1959년이며, 1898년생인 루이스는 1963년에 작고하므로, 여기 소개된 일곱 편의 에세이는 루이스가 기독교 사상가이자 작가, 비평가, 영문학자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이후의 글로써 루이스의 연륜과 통찰이 잘 묻어난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말에 태어난 루이스는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장본인이며, 청년일 때 스스로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1929년에 기독교 (성공회)로 회심하여 작고하기 전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작가의 배경을 굳이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에세이란 글쓴이의 사상 혹은 세계관 (혹은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직접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한계를 보았으며, 예기치 못한 순간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경험을 통해 한때 떠났던 하나님을 다시 믿게 된 사람이었다. 또한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기에 인간과 신에 대한 관점이 유달랐을 거라는 추측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의 여러 작품을 읽어오며 내가 느낀 그의 탁월한 매력은 학자로서의 논리 정연함과 겸손함,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진솔함과 성실함이다. 기독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많은 부분이 의외로 지적인 측면, 즉 솔직한 질문과 합리적인 대답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해소될 수 있음을 나는 루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모든 답을 지적인 방법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어디까지가 과학적인 접근으로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를 분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기독교 변증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데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암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루이스의 개인사를 통해 기독교 신앙에는 논리와 이성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러한 역경 가운데서만이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될 수 있음을 나는 루이스를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참 지식인은 지식주의에 빠지지 않고 그것의 한계 혹은 경계를 알고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나에겐 루이스가 그중 하나다. 

일곱 편의 에세이 중 첫 번째로 소개되는 ‘기도의 효력’이라는 글에서 나에게 잡힌 메시지는 ‘기도는 마법이 아니라 요청’이라는 사실이다. 마법은 효력을 따질 수 있지만, 기도의 경우 효력을 따진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요청의 핵심은 강제성이 없다는 것, 즉 상대가 들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아뢰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믿음의 고집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서도 찬찬히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너무나 당연한 것 같으나 다시금 유레카를 외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모호함은 믿음과 충돌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입니다. 믿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우리는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인 확실성이 있어야 믿겠다는 말은 무의미합니다. 그런 증거가 나오고 나면 믿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결정적 증거가 주어질 때 남는 것은 그것이 주어지기 전에 믿어서 생겨난 관계, 또는 믿지 않아서 생겨난 관계뿐이겠지요.’ 명문 아닌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논리와 이성을 무시하지도 않지만 그것에 갇히지도 않는 그 무엇인 것이다. 

여섯 번째 에세이 ‘종교와 우주 개발’에서 루이스는 외계인의 존재가 가져올 수 있는 신학적인 쟁점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고 쉽게 풀어준다. 루이스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저는 다른 행성에 사는 생명체가 설령 발견된다 해도, 그 이후의 결과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루이스가 이 글에서 천착하는 논리는 그들은 지구인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외부인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과 그들의 타락 여부에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간파한 인간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루이스의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일 것이다. 

마지막 에세이 ‘세상의 마지막 밤’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 교리를 다룬다. 이 글은 예배 때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에도 늘 등장하는 재림에 대한 문구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재림 교리를 강조하기를 주저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희비극으로 끝났던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휴거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사기꾼들의 사례도 언급하면서 루이스는 우리가 강조해야 할 부분은 예수님이 언제 재림할 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반드시 재림하실 테고 그때가 언제인지 하나님 아버지 빼곤 아무도 모르니 항상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요청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요청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떠남과 정착의 무한반복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루이스의 소설을 나는 더 좋아하지만, 오랜만에 루이스의 논리 정연하고 진솔한 글을 읽으니 무언가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책장에 꽂혀있는 그의 다른 저서, ‘피고석의 하나님’도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

* 루이스 읽기
1. 예기치 않은 기쁨: https://rtmodel.tistory.com/682
2. 고통의 문제: https://rtmodel.tistory.com/695
3. 헤아려 본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699
4.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https://rtmodel.tistory.com/822
5. 천국과 지옥의 이혼: https://rtmodel.tistory.com/852
6. 순전한 기독교: https://rtmodel.tistory.com/911
7. 시편 사색: https://rtmodel.tistory.com/942
8. 순례자의 귀향: https://rtmodel.tistory.com/1164
9. 순전한 그리스도인 (by 김진혁): https://rtmodel.tistory.com/1176
10. 세상의 마지막 밤: https://rtmodel.tistory.com/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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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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