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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에 찬 눈으로 높은 산과 깊은 광맥을 마주하는 낮은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저, ‘도스토옙스키를 쓰다’를 읽고

얼마나 많이 읽으면, 아니 어떻게 읽으면 이런 평전을 쓸 수 있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조금 안다고 여겨왔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아는 건 흩어진 여러 조각 중 하나일 뿐이었구나, 표층도 뚫지 못한 주제에 거만하게 내부를 아는 척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흥분으로 가득 찬 채 수치와 감동의 경계를 비틀거리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그가 또 하나의 높은 산이라서 반갑다. 그 산을 감히 내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누군가의 평전을 읽는다는 건 그 누군가에 대한 어지간한 관심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그 누군가가 작가라면 그 작가의 작품을 많이 섭렵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뒤따른다. 사람은 말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기 마련이고, 작가에겐 작품이 그 삶이니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세상엔 수많은 평전들이 존재한다. 내가 읽은 평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전집 읽기라는 높은 산을 오르고 있는 (아직 읽지 못한 여러 작품들이 책장에서 날 기다린다. 남은 작품 대부분이 단편이기에 내가 오르는 도스토옙스키라는 거대한 산에 오르는 여정에서 나는 현재 삼 분의 이 정도에 와 있는 것 같다) 작가 중 나의 최애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함께 읽고 서로 다른 감상과 해석을 나누는 일은 보람되다. 지금도 나는 이 과업을 사랑하고 적극 장려하는 입장이다. 혼자만 읽는 것보단 함께 읽고 나눌 때 더욱 깊고 풍성한 작품의 세계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의 나눔도 이럴진대, 작품 수가 두 권, 세 권 늘어나면 나눔의 깊이와 풍성함은 그에 따라 배가 된다. 그렇다면 전집 읽기를 함께 한 나눔은 어떨까. 내가 이 평전을 손에 든 이유는 바로 이런 호기심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평전은 누군가가 쓴 평전이기도 하기에, 나는 도스토옙스키만이 아닌 슈테판 츠바이크와도 나눔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높은 산이나 깊은 광맥을 따라 걷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갈래의 길은 서로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교차점을 가지기도 한다. 한 작품이 아닌 여러 작품을 읽고 나누는 길은 확률적으로도 교차점을 많이 가질 것이다. 실로 그랬다. 츠바이크가 예로 드는 작품들의 장면들이나 인물들을 언급하는 이유 혹은 배경에서 나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부분을 언급하더라도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정도로 츠바이크가 쌓은 산은 높았고, 그가 판 광맥은 깊었다. 평전을 읽으며 이렇게 압도되는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다. 원래 평전이란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건 다른 평전들을 차차 읽어나가면 될 일이다.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츠바이크 읽기도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두 거대한 산을 내가 알다니, 맛을 보고 있다니, 어디쯤인지 몰라도 그 산을 오르고 있다니, 한 명의 순례자로서 나는 뜨거운 마음을 담아 깊이 감사할 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읽기
1. 감정의 혼란: https://rtmodel.tistory.com/1608 
2. 환상의 밤: https://rtmodel.tistory.com/1615 
3.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https://rtmodel.tistory.com/1625 

* 도스토옙스키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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