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부끄러워할 줄 알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8. 16. 18:26

부끄러워할 줄 알기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에서 의외로 중요한 잣대가 되지 않나 싶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끄러워할 때 나는 주로 비인간성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땐 주로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인간다움을 느낀다. 물론 부끄러워하는 맥락이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인간다움과 매력을 느낀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열등감에 빠지는 것과는 다르다. 우린 모두 완벽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시기를 지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린 모두 어느 정도 열등감을 느낀다. 나는 열등감이 심해지면 문제가 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것에 빠지는 것과 달리 자연스럽게 겸손이라는 미덕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열등감이 오만함의 거울상으로 표출되는 경우는 겸손이 아닌 교만과 직결된다. 교만은 약자에게 가서는 열등감으로, 강자에게 가서는 오만함으로 발현되는 법이다.

요컨대, 부끄러워할 줄 알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열등감을 느끼지만, 열등감에 빠지지 않는 사람. 그 사이를 잘 유지하는 혹은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 내가 인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느끼지 말라고, 열등감 따윈 개나 줘버리고 그렇게 느끼지도 말라고 단호하게 조언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경솔한 조언이며 심지어 그렇게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면 모를까,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존재라도 한단 말인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을 뻔뻔하다고 한다. 뻔뻔함에서 인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단점 혹은 약점을 애써 숨기려고 할 필요를 나는 점점 더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이것이 열등감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못하면 못한다고, 모자라면 모자라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 그건 비굴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당당한 자기 고백이며 건강한 인간다움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연변이  (0) 2023.09.20
변화  (0) 2023.09.11
처세와 거리  (0) 2023.08.08
기억, 그 신비  (0) 2023.08.04
이간질하는 자  (0) 2023.08.0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