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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서를 넘어서는 인생 에세이

엔도 슈사쿠 저,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읽고

인생 사는 노하우, 인간관계 잘하는 법 등의 처세술을 적어놓은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은 일찌감치 졸업했다. 진부한 원리를 마치 저자 혼자 알아낸 것처럼 호들갑 떨며 비결을 빙자하여 자기 자랑하는 꼴이 보기 싫었고, 거짓 겸손을 나름 우아하게 사용하며 토해낸 열변도 한낱 시공간에 제한된 특수한 상황 논리에 철저하게 좌우되는 단발적인 이벤트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겠지만, 그런 걸 찾아내는 데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읽을 것들은 언제나 넘쳐나 산을 이루고 있는데도 나는 그 높은 정상도 보지 못하는 저 아래 땅바닥에 붙어 있는 개미 한 마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 읽지 못할 책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자기 계발서는 읽어야 할 목록에서 가장 먼저 제거되었다. 후회는커녕 독서에 막 입문하여 자기 계발서 따위에 시간과 돈을 탕진하고 있는 사람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 역시 그런 종류에 해당된다. 제목을 보라. ‘나를 사랑하는 법’. 그리고 부제도 마찬가지다. ‘엔도 슈사쿠의 행복론’. 책 표지만 보고도 가장 먼저 거르는 책에 속한다. 그러나 나는 왜 이 책을, 비록 정독까진 하지 못했지만, 읽게 되었을까? 이유는 딱 하나. 엔도 슈사쿠라는 작가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작품은 총 셋인데, 모두 강렬한 인상과 진한 여운을 남기는 동시에 깊은 감동까지 주었기 때문이다. ‘침묵’, ‘침묵의 소리’, 그리고 ‘깊은 강’은 재독 리스트에 올라가 있으며, 한국 와서 재구입한 책에 속한다.

고백하자면, 이 책 ‘나를 사랑하는 법’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중고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구입하다가 무료배송을 위한 금액이 조금 모자라 원래 계획에 없던 책들 중 한 권을 더 사고자 충동적으로 여러 책들을 훑어보다가 단지 엔도 슈사쿠라는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엔도 슈사쿠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그냥 줘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뒤에 번역자가 쓴 ‘옮기고 나서’에 내가 이 책을 읽고 받은 인상이 간결하게 적혀 있다. 다음과 같다. 

‘…인생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시중에 소개되고 있는 이와 비슷한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엔도 슈사쿠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이 책 속에 그대로 녹아 있으며,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작가적 역량을 뒷받침해 주는 그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단지 처세술이랍시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은 싸구려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오히려 굴곡 많고 사연 많은 엔도 슈사쿠의 인생 여정을 절제된 톤으로 볼 수 있는 에세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어낸 사람, 전쟁 후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간 사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머니의 강권으로 기독교에 귀의한 사람, 그러나 그것이 몸에 맞지 않은 양복임을 깨닫고 저항했던 사람, 그 저항의 방법이 옷을 벗어버리는 게 아니라 다행히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본옷으로 재단하여 만들고자 시도했던 사람, 그렇게 하여 ‘침묵’이나 ‘깊은 강’과 같은 대작을 쓰게 되었던 사람, 엔도 슈사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 책에 쓰인 것과 비슷한 말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나는 엔도 슈사쿠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덧붙여, 엔도 슈사쿠가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유머를 사랑하고 즐겼으며 가무도 좋아했고 극단도 하나 오랫동안 운영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우린 ‘침묵’ 한 작품으로 그를 너무 진지하고 고뇌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렸던 게 아닌가 싶다.

* 슈사쿠 읽기
1. 침묵: https://rtmodel.tistory.com/383
2. 침묵의 소리: https://rtmodel.tistory.com/390
3. 깊은 강: https://rtmodel.tistory.com/1378
4. 나를 사랑하는 법: https://rtmodel.tistory.com/1656

#시아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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