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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문학을 넘어 인간에 이르기까지
신형철 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믿음직한 나침반처럼 나는 독서와 독서 사이에 신형철의 글을 조금씩 꺼내 읽는다. 한꺼번에 다 읽기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랬다가는 나의 소화 능력을 초과하여 오줌만 노랗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것은 아끼고 싶은 법. 몇 꼭지씩 나눠 책과 책 사이에 읽자는 게 신형철의 글을 아끼는 나만의 방법이자 그의 글을 읽는 나만의 독법이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완독하는 데에도 세 달 정도 걸렸다. 그 사이에 읽은 책도 족히 열 권은 넘을 것이다.
소화 불량일 때 찾아 먹는 신뢰할 만한 소화제처럼 나는 쓰기 대비 읽기에 치우칠 때마다 신형철의 글을 찾아 읽는다. 능수능란하고 처세에 능한 수많은 어른들의 다양한 페르소나에 진이 빠질 때 때마침 눈에 들어온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것처럼 나는 읽기에 함몰되어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마다 신형철의 글을 읽는다. 그러면 막혔던 관이 뚫리고 정상적인 흐름을 되찾는 것처럼 나의 읽기의 영점도 재조정되곤 한다. 이것저것 열 권이 넘는 책을 허겁지겁 읽을 땐 몰랐다. 흐트러지고 복잡해진 나의 방향을. 신형철의 글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읽기를 넘어 쓰기에 대한 방향도 선명해진다.
‘영화평론가가 아닌 문학평론가가 쓴 영화 평론.‘ 그러나 이 책을 설명하기엔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신형철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영화평론가가 아닌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쓴 영화 평론.‘ 나는 영화 평론을 읽기 위해 이 책을 고른 게 아니다. 영화를 자주 보지도 않을뿐더러 영화에 대한 평론은 여태껏 한 번도 일부러 찾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신형철의 글을 읽기 위해서였다. 영화 평론이 아닌 신형철의 글로써 이 책을 읽어서인지 나에게 이 책은 내가 읽은 신형철의 세 번째 책일 뿐이다. 참 아쉽게도 그의 저서는 몇 권 안 된다. 내가 읽지 않은 그의 두 저서 ‘몰락의 에티카’와 ‘느낌의 공동체’는 지금도 아주 느리게 아끼면서 읽어나가고 있다.
문학평론가가 쓴 영화 평론 덕분에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과 영화의 닮은 점이 좀 더 명료하게 보이는 것 같다. 말하자면, 이야기다. 내러티브, 혹은 스토리텔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참고로, 2014년 10월에 초판 1쇄를 찍고 2015년 3월에 7쇄를 찍은 이 책은 2012년 여름부터 2014년 봄까지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신형철의 스토리-텔링’이라는 타이틀로 매달 연재한 글들을 주로 모아 엮은 것이다. 총 네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각 주제는 다섯 꼭지의 영화 평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차에도 나와 있지만, 네 주제는 다음과 같다. 사랑, 욕망, 윤리, 그리고 성장. 이것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네 주제는 영화의 고유한 주제가 아니라 문학을 포함하는 인간들이 만드는 모든 이야기의 고유한 주제라는 사실을. 인간은 사랑하고, 욕망하고, 윤리를 어기거나 지키거나 혹은 그러려고 혹은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고, 갖은 어려움을 경험하며 내적인 성장을 이뤄낸다. 문학이나 영화는 모두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으로써 존재한다. 위의 네 가지 키워드는 인간사를 요약한 네 단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것이 이 책, 그러니까 ‘영화평론가가 아닌 문학평론가가 쓴 영화 평론’의 고유한 장점이라 생각한다. 거기에다가 신형철이라는 독보적인 존재가 쓴 글이라는 점은 이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 같다. 영화를 넘어 문학을 넘어 인간에 이르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나 ‘인생의 역사’에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도 첫 번째 꼭지와 두 번째 꼭지 (혹은 세 번째 꼭지까지)에서 나는 숨을 참을 만큼 깊은 울림을 느꼈다. 여기서 그 울림이 어떻다고 설명할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울림이라는 것이 신형철을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는 이유이자 신형철만이 해낼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일 것이다. 여기선 그저 그가 늘 강조하는 ‘정확함’이라는 단어밖엔 표현할 수 없어 감상문을 쓰는 나로선 답답할 뿐이다.
신형철은 한 꼭지를 쓰기 위해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대여섯 번 봤다고 한다. 글 하나에 담긴 보이지 않는 애씀과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함’의 깊이와 예리함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다시 볼 때마다 새롭게 혹은 다르게 보이는 것들로 인해 그의 글도 그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이 가해졌을 것이다. 한 달에 한 꼭지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신형철은 그렇게나 노력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 정확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시간과 마음과 행위들. 글을 대할 때 조금 더 진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확한 사랑, 정확한 글을 위해서.
* 신형철 읽기
1.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1161
2. 인생의 역사: https://rtmodel.tistory.com/1525
3. 정확한 사랑의 실험: https://rtmodel.tistory.com/1654
#마음산책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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